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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권

동래읍성 뿌리길(얼쑤옛길 1~2코스) ① - 2024.1.27일

by 요다애비 2024. 2. 2.

부산 동래는 삼한시대부터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어 가야문화부터 임진왜란 역사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동래구청은 동래 지역의 명소를 모아  탐방 코스로 4개 코스의 '얼쑤 옛길'을 개발하였는데, 얼쑤옛길 1코스와 2코스가 포함된 길을 걸었습니다. 
걸었던 코스는 수안역 내 임진왜란역사관 ~ 동래부동헌 ~ 장군청 ~ 송공단 ~ 박차정생가 ~ 충렬사 ~ 인생문 ~ 복천동 고분군 ~ 북장대 ~ 동래읍성 북문 ~ 장영실 과학동산 (동래읍성역사관) ~ 서장대 ~ 동래향교 순이었습니다.

※ 문화재 설명은 주로 동래구청 홈피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동래 얼쑤옛길 기록>
 

 
 
▼ 수안역 내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에서 출발

부산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철도 역사 내 동래읍성 임진왜란역사관이 있습니다.
수안역을 만들 때 성 앞 해자(字)라 불리는 도랑에서 임진왜란 당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과 무기들이 무더기로 나왔으며, 이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 동래부 동헌... 현재는 공사 중으로 관람불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동헌으로서는 매우 드문 유적이다. 산성(山城), 진성(津城)과 달리 평야와 산지에 지은 평산성(平山城) 안에 있다.
부산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유일한 동헌으로 3·1 만세운동의 터인 수안 치안센터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많은 건물이 최근에 새롭게 조성되어, 옛 정취를 찾는 사람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내역을 살펴보면 짠하기도 하고 새록새록 재미도 있다. 정3품 당상관(堂上官)이 부사(府使)로 임명된 동래부는, 국방 및 대일 외교상 중요시되었던 곳이므로 관아시설도 위용을 갖출 필요가 있어 다른 고을에 비해 규모가 컸다.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부산시 유형문화재 1호 충신당(忠信堂)이 동헌의 중심 건물이다. 왼쪽에 연심당(燕深堂), 오른쪽에는 부사의 휴식공간으로 추정되는 독경당(篤敬堂)이 있다.
왼쪽에 망미루(望美樓)가 있고 뒤편에는 민가에서 징발한 말을 관리했던 고마청(雇馬廳)이 있다 
 
 

 

▼  동래 수안치안센터 앞 문지기

 
 
 
▼  동래 장관청

수안역 5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돌아가면 몇 분 안에 동래 장관청(將官廳)이라는 무관들의 관청 건물을 만난다. 꽃과 작은 나무가 있고 평범해 보이는 옛 전통 건물이다. 마루에 앉아 휴식을 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 도심 속의 여유가 새삼 느껴진다. 특히 건물 왼쪽으로 돌아 뒤편으로 가면 세상에 둘도 없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뒷마루가 있다.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공간이다. 조용히 앉아 담과 나무를 보고 있으면 힐링이 따로 없다. 이곳은 어느 계절과도 어울린다.
이제 이 동래 장관청을 지키려 했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동래기영회(東萊耆英會)’라는 조직은 동래지역 유지들의 모임이다. 애초에는 무관들이 만든 일종의 계(契)로 무려 17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아직도 존재하는 단체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현대화 개발의 기세 속에서도 이곳을 오롯이 지켜냈다. 그뿐 아니라 부서지고 허물어진 송공단에서 송상현 부사와 순국선열들의 제를 대신 올리기도 했다. 
동래가 왜 옛스럽고 토박이들은 왜 고집스러운 것인지, 그리고 동래가 왜 항거의 고장으로 불리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  골목을 지나서...



▼  간판이 깔끔하네요

 
 
▼  송공단

동래시장 뒤편에는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에서 장렬하게 순절한 민관군 등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고 제를 올리는 공간이 있다. 도심 시장뒤에 있어 더욱 빛이 나는 느낌이다. 송공단은 송(宋)상현 공(公)을 기리며 제례를 올리는 단(檀)이란 뜻이다. 처음에는 신분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배치했었지만 2005년 7단 15기를 복원해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했다
 

 

▼ 아주 작은 주유차량을 구경하고...

 
 
▼  박차정 의사 생가

역사의 터에서 반드시 근엄함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래는 반복해서 말하지만 도심 속에 숨어있는 문화유산이자 쉼터를 가진 곳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 어김없이 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 <암살>의 의롭고 멋진 투사 김원봉 독립운동가의 아내 박차정의사 생가도 그렇다. 먹거리로 유명한 동래시장 옆 수안인정시장에서 동래고등학교 쪽으로 가다 보면 동래의 명소 맛집 가게가 나오고 좀 더 가면 동래고등학교 정문 가기 전 박차정 의사 생가 안내판이 보인다. 골목을 돌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한옥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전통가옥이며 분위기가 여유롭다. 마루에 앉아 도심을 조망하거나 잔디와 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힐링이 된다. 치열한 삶을 산 독립운동가들이 이렇게 우리에게 여유를 준다고 생각하니 더욱 고맙다.
가옥은 지어진 지 10년밖에 안되었고 그녀의 유품도 거의 없다. 이곳 생가터에 자리했다는 초목도 찾기 어렵다. 머나먼 이국에서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장부의 유해도 겨우 해방 이후 돌아와 밀양에 안치되었다.
하지만 동래가 낳은 여전사의 정신만큼은 점 점 세상에 알려져 이제는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또한, 가정 먼저 독립유공자가 된 박차정 의사에 이어 큰오빠 박문희 선생(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과 둘째 오빠 박문호 선생(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어 한 집안에서 독립유공자 3명이 배출되었다.
박차정 의사 남매의 혼을 되새기며 툇마루에 앉아 도심 속의 여유를 즐겨 본다. 해설사에 따르면, 비 오는 처마 밑에서 빗소리에 감개무량해하는 관람객들이 있다고도 하고 가끔 이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와 그녀와의 인연을 추억 삼아 이야기하고 간다고 한다.
교과서나 설명글에서 만나는 위인이 아닌 친근하고 정겨운 우리의 선열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생가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욱 큰 가치일 수도 있다.
 

 
 
▼  충렬사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당 중 하나이다. 도시철도 4호선 충렬사역에 내리면 임진왜란 당시 선열의 혼을 모신 충렬사를 만난다. 넓은 경내와 함께 사당의 위치가 의외로 높다. 이곳에 올라서면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모시기 위해 1605년(선조 38) 당시의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동래읍성 남문 안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작이다.
그 후 선위사(宣慰使) 이민구의 청으로 1624년(인조 2)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652년(효종 3) 동래부사 윤문거가 당시의 충렬사 사당이 좁고 저습하며, 성문과 가까이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는 점과 송상현 공의 학행과 충절은 후학의 사표가 되므로 그 학행과 충절을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안락동 현 충렬사 자리로 이전했다. 강당을 창건한 후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규모로 정화한 후 임진왜란 당시 부산지역에서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모든 선열의 위패를 직책 또는 증직(曾職)의 순서에 따라 93위의 신위로 모셨다. 매년 5월 25일 부산시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제향을 봉행하고 있으며,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는 충렬사 안락서원에서 제향을 올린다.
 

 

▼  충렬사 뒤쪽 언덕을 넘어 복천동고분군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