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리아둘레길/외씨버선길

외씨버선길 4길 (장계향디미방길) [청송] 고현지 ~ [영양] 선바위관광지 (2024.4.6일)

by 요다애비 2024. 4. 8.

제법 오래전에 군립 청송야송미술관을 알게 되었지만, 관람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은 외씨버선길 4길만 걷고 야송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 일찍 서둘러서 집을 나섰습니다.
외씨버선길 4길은 지경리재를 경계로 청송군에서 영양군으로 넘어가게 되며, 영양군의 석보면과 입암면을 거쳐 선바위관광지까지 18.8Km를 걷는 코스입니다.
외씨버선길 4길은 장계향디미방길이라는데... 이 길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영남일보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 경북 영양군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여중군자로 불리는 장계향 선생이다. 장계향 선생의 일생에 대한 향취는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 있는 '언덕 위 마을'이란 뜻의 두들마을에 남아 있다. 장계향 선생이 남긴 최초의 한글요리책 '음식디미방'과 관련한 체험관과 고즈넉한 고택의 풍경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이곳은 1640년 인조 18년에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됐다. 이시명 선생의 부인이 장계향 선생이다. 옛 고택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진 두들마을은 석계 선생의 후손인 재령 이씨의 집성촌이다. 1899년 이곳에 국립병원 격인 광제원(廣濟院)이 있었다 해서 '원두들'이라 불리다가 '원리리'로 변경됐다.
두들마을에는 전통가옥 30여 채가 남아있고 1994년 정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받을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 문을 연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이하 체험교육원)은 하나의 이름으로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일생을 가진 장계향 선생을 바로 알 수 있는 곳이다.
서예가, 화가, 시인, 사상가, 교육자, 과학자, 사회사업가 그리고 어머니까지 주어진 삶을 오롯이 걸었을 뿐인데 시대의 한계, 성별의 굴레, 신분의 차이를 넘어 교훈과 감동으로 역사가 된 장계향 선생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출처 : 영남일보]
 
그동안 주로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을 걸었던 나에게는 이 길에서 만나는 지경리재와 두들마을, 옥계지를 지나서 힘들게 올라야 만나는 임도 등은 또 다른 매력적인 길이었으며, 특히 한적하여 좋았습니다.   
1길에서 4길까지 걸으면서도 아직은 외씨버선길을 걷는 이를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4길을 무사히 걷고 서둘러 야송미술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외씨버선길 4길 개념도>
 

 
 
<외씨버선길 4길 기록>
 

 
 
<외씨버선길 4길 동영상>
 

 
 
 
 
▼ 부산 집에서 5시 출발 → 진보버스터미널에서 8시 버스(무료) 탑승 → 8시 10분경 시량 2리(송이골) 버스정류장에 하차
 

 
 
 
▼ 오전 8시 11분, 고현교 옆 송이골천과 외씨버선길 안내판에서 4길 출발
 

 
 
▼ 시량 2리, 송이골버스정류장
 

 
 
▼ 영양구간 4길, 장계향디미방길 시점 표지판
 

 
 
▼ 시량교를 건너서...
 

 
 
▼ 고현저수지
 

 
 
▼ 진시골천을 따라서...
 

 
 
▼ 아침 안개와 이슬방울들...
 

 
 
▼ 좌측 지경리재 쪽으로...
 

 
 
▼ 아침 짓는 마을을 지나...
 

 
 
▼ 언덕을 오르며...
 

 
 
▼ 올라온 진시골을 뒤돌아보고...
 

 
 
▼ 지경리재에 도착
 

 
 
▼ 지경리재
    청송 고현지를 출발해서 진시골길을 걸어 이 재를 넘어서면 골짜기가 마치 소의 구유처럼 생겼다고 해서 구수골이라고 불리는 영양 지경리로 들어서게 된다.
이고개는 영양군과 청송군의 경계로 조선시대에 옛 영해부와 진보현의 경계가 되는 땅이라 하여 지경이라 했다.

▼ 영양군
    영양군은 조상의 숭고한 얼이 담겨 있는 문화유산과 반딧불이 서식하고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는 청청지역이다.
또한 영남의 영산인 해발 1,219m의 일월산을 중심으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 유적을 보전하고 있어 개발 잠재력이 풍부하며 특산물은 고추, 사과, 담배, 더덕, 천궁, 천마, 어수리 곰취나물, 산머루 등이 있다.

 

 
 
▼ 기쁘게도 양심 장독대에 생수 4통이 있네요... 저는 필요 없어 꼭 필요한 방문객을 위해 뚜껑을 잘 덮어 놓았습니다... 
     

 
 
▼ 지경리재를 내려오며...
 

 
 
▼이곳에는 곳곳에 태양광 집열판이 눈에 뜨입니다...
 

 
 
▼ 지경리마을 앞 정자
 

 
 
▼ 원지길 삼거리
 

 
 
▼ 축사도 지나고...
 

 
 
▼ 아마 태양광 건립공사 붐이 일었나 봅니다...
 

 
 
▼ 외딴길을 따라서...
 

 
 
▼ 석보면 소재지 마을이 보입니다...
 

 
 
▼ 원리리수변공원 조형물
 

 
 
▼ 원리교를 건너서...
 

 
 
▼ 두들마을 쪽으로...
 

 
 
▼ 낙기대에 도착
 

 
 
▼ 낙기대
     낙기대·세심대 두 대는 석보면 원리마을 인자천 (仁志川)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선생께서 일찍이 명명(命名)한 것으로써 글씨를 쓰고 돌에 새긴 것은 넷째 항재(恒齋) 이승일(李崇选,1809~1897)선생이 손수 쓰고 새긴 것이다.
낙기대(樂飢臺)의 내용은 선비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덕목으로 삼고 궁불실의(窮不失義)를 본령(本 )으로 실천하라는 심오한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셋째 아들 암(葛庵) 이현일(李玄选)의 학문과 사상에 미친 영향이 컸고 다시 자식 형제들이 가난 속에서도 학문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독특한 향기로 승화되었다. 세심대(洗心臺)는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지향하고픈 마음을 냇물로 씻어내기 위해 이 바위에 앉아 대자연을 감상하던 곳으로 조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심신이 상쾌하고 잡념을 잊고 마음을 씻을 수 있다는 뜻에서 대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 영양은 지금 개나리가 한창입니다...
 

 
 
▼ 병임고택
 

 
 
▼ 고택 앞 유적비
 

 
 
▼ 두들마을을 둘러봅니다...
 

 
 
▼ 두들마을 안내판... 시간 때문에 다 둘러보지는 못하였습니다.
 

 
 
▼ 석계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
    이 건물은 조선 인조仁祖, 현종년간順宗年間의 학자인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 선생이 인조 18년(1540)에 세운 고택이다.
선생은 석계 위에 집을 짓고 호를 석계라 하고 이곳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도 선생의 학명學名 못지않게 효행孝行과 부덕婦德·학문學文·예술 藝術 등을 겸비한 학자로 세인이 신사임당申師任堂과 동등한 인물로 칭송하여 오고 있다. 이 집은 일자형 사랑채와 안채가 이자형으로 배치하여 토담을 막아 허실감 虛實感을 매운 뜰 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되어있다.

 

 
 
▼ 또 다른 두들마을의 고택 등을 둘러보고...
 

 
 
▼ 영양군 슬로시티 조형물
 

 
 
▼ 슬로시티(siow city)
     1999년 10월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 전 시장을 비롯한 몇몇 시장들이 모여 위협받는 달콤한 인생(ta dolce vita)의 미래를 염려하여 '치따로(cittaslow), 즉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을 출범시켰다. 그러니까 이 운동은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실기(slow movement)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슬로시티운동을 왜 하나? 이렇게 물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우리는 다르게 산다는 운동이다.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한 형태로 빠름이 주는 편리 함을 손에 넣기 위해 값비싼 느림의 즐거움과 행복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하는 슬로시티의 철학은 성장에서 성숙, 삶의 양에서 삶의 질로,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느림의 기술(Slew vare)은 느림(Slow), 작음(Small), 지속성(Sustainable)에 둔다.
슬로시티운동은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섬기는 '속도 숭배'를 느림 숭배'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빠름은 짜릿하고 생산적이고 강력할 수 있으며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도 한국은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문제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아니라 빠름과 느림,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는 것이다. 슬로시티 운동은 달콤한 인생과 정보 시대의 역동성을 조화시키고 중도(中道)를 찾기 위한 처방이다.
1999년 국제슬로시티운동이 출범된 이래 2016년 8월까지 30개국 255개 도시로 확대되었으며 영양군은 2017년 5월 12일 우리나라에서 11번째로 가입되었다.
 

 
 
▼ 이병주 시비
 

 
 
▼ 두들마을 표지석
 

 
 
▼ 이문열 관련 안내판
 

 
 
▼ 음식디미방 체험관
 

 
 
▼ 음식디미방체험관 운영안내
      음식디미방은 1670여 년 겸 여중군자 장계향(1598~1680)이 후손들을 위해 일흔이 넘어서 지은 조리서입니다
1600년대 조선조 중엽과 말엽 경상도 지방의 가정에서 실제 만들었던 음식법과 저장·발효식품, 식품보관법 등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조리법을 서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서, 17세기 중엽 한국인들의 식생활을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귀중한 문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식디미방체험관은 슬로푸드요리 특성상 준비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사전 예약제를 실시합니다.
2일 전까지 예약신청을 하셔야 하며, 점심은 2인 이상, 저녁은 10인 이상 예약 가능합니다.
 

 
 
▼ 음식디미방 체험관
      - 사대부 양반가의 정갈한 정신을 맛보다 -
"음식디미방'은 경상북도 양지방에 살았던 사대부가의 장계향 선생(1598~1680)이 후손들을 위해 1672년경 일흔이 넘어서 지은 조리서이며, 한글 최초의 음식 백과서, 현존 최고의 한글조리서로써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책은 앞뒤 표지 두 장을 포함해 총 30장의 필사본으로 되어있으며, 1600년대 중엽과 말엽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발효 식품, 식품보관법 등 146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또한 "음식디미방'은 영양군이 세계 속의 명품음식을 꿈꾸며 개발한 우리 전통의 반가음식 브랜드이기도 하다. 귀한 손님을 모시는 오랜 정성이 면면이 후손의 손길로 이어지고 있는 음식디미방체험관에서 340여 년을 이어 온 음식디미방의 조리비법을 통해 우리 민족 고유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더없이 맑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한데 어우러지는 음식디미방의 품격 있는 음식,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정신은 오늘음 사는 현대인들에게 깊이와 울림이 있는 다른 삶을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두들마을의 각종 안내도
 

 
 
▼ 석보면 보건지소를 지나서...
 

 
 
▼ 석보 119 지역대
 

 
 
▼ 인삼밭인 듯?
 

 
 
▼ 잠깐 석영로를 걸어서...
 

 
 
▼ 옥계리버스정류장
 

 
 
▼ 개천을 따라서...
 

 
 
▼ 구글에서 백할미새로 나오네요...
     두 마리가 날아다닙니다...
 

 
 
▼ 고추 파종을 한 지역인가?
 

 
 
▼ 금계, 옥계, 꿩 사육장
 

 

 
 
▼ 일하시는 분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모두 외국인입니다...
 

 
 
▼ 옥계지
 

 
 
▼ 완주인증 사진촬영지점
 

 
 
▼ 시멘트길 끝지점
 

 
 
▼ 옥계지를 뒤돌아보고...
 

 
 
▼ 옥계지 상류, 이곳부터 산길로 접어듭니다...
 

 
 
▼ 원시림을 걷습니다...
 

 
 
▼ 흰 제비꽃
 

 
 
▼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
 

 
 
▼ 임도에 도착
 

 
 
▼ 양항임도삼거리
    두들마을을 지나 옥계마을을 벗하며 계곡길을 따라 임도삼거리로 들어서면 옛날 병원이 흔하지 않은 시기 여름에 땀띠가 나거나 몸이 아플 때 체질개선에 도움을 주는 양항약수를 먹기 위해 이 길을 넘어 다녔다 한다.
지금은 임도로 잘 정비되어 있어 임도를 따라 양항약수탕과 입암면소재지, 옥계리로 내려갈 수 있다.
외씨버선길은 반변천과 함께 어우러지는 전경을 바라보며 입암면 소재지로 가는 5km 정도의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숲 사이  아래쪽에 옥계지가 보입니다...
 

 
 
▼ 양지꽃과 한자리에서 열심히 날갯짓하며 계속 비행 중인 빌로오드재니등에
 

 
 
▼ 빌로오드재니등에
    ☞  빌로오드재니등에 : 파리목 재니등에과의 곤충으로 몸길이는 7~11mm로 검은 몸에는 연한 황색의 털이 나 있다. 한국, 일본, 유럽, 북아메리카, 북아프리카등의 분포한다.

 

 
 
▼ 올라온 계곡을 내려다보고...
 

 
 
▼ 산 넘어 풍력발전기가 무수히 많이 보입니다...
 

 
 
▼ 다양한 색의 제비꽃들...
 

 
 
▼ 개나리도 한창입니다...
 

 
 
▼ 내리막이라 속도를 냅니다...
 

 
 
▼ 또 다른 임도삼거리...
 

 
 
▼ 이제 마을도 보이네요
 

 
 
▼ 임도를 내려와 처음 마주친 가옥
 

 
 
▼ 입암마을 기암정(沂巖亭)
     기암정은 부용재를 지은 김세보의 9대손 기암 김종환(沂巖 金鍾煥 1828~1904)이 1878년(고종 15년)에 지은 정자이다
기암정이 자리하고 있는 입암면 신구리는 청송군 진보에서 영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이 되는 마을로, 마을의 모양이 배와 같다고 하여 물이 생기면 좋지 않아서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 부용재(芙蓉齋)
    부용재는 한성판윤을 역임한 김세보(金世輔, 1468~1538)가 연산군 때에 벼슬을 그만두고 영양에 들어와 일월산 중에 은거하다가 중종반정 이후 입암에 들어와 시를 짓고 글을 읽기 위한 장소로 삼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 입암어린이집
 

 
 
▼ 입암면사무소, 행정복지센터
 
 

 
 
▼ 조기리길 안내판
 

 
 
▼ 입암정류장
 

 
 
▼ 신구 1리 표지석
 

 
 
▼ 신구 1리 거리를 지나며...
 

 
 
▼ 입암면문화체육센터... 국회의원 사전투표소이네요.. 저는 어제 투표하였습니다...
    언제쯤 존경받는 국회의원이 나올까요?
 

 
 
▼ 입암교 삼거리
 

 
 
▼ 입암초등학교
 

 
 
▼ 초등학교 뒤 두 거루의 백목련이 절정입니다...
 

 
 
▼ 신구 2리 노인회관
 

 
 
▼ 영양 신구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4호)
     이 석탑은 이중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을 올린 일반형一般形의 석탑이며, 옥개의 종단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기 한 개의 돌로 조성하였고 탑신석에는 우주가 각출되어 있으며, 3층 옥개석 위에는 노반석과 복발이 놓여있다. 3층 탑신석은 결실되어 1999년 보수 시 보충한 것이다.
1층 탑신석 상부에는 직사각형 사리공舍利孔이 있었으며, 사리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 약산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1호)
     이 당은 장례원 판결사 조광의趙光義(1543~1608)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으로, 건축연대는 조선 인조仁祖 때인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 3 칸 측면 2칸으로 원기둥과 사각기둥을 사용한 목조木造 팔작지붕 건물로서 내부 구조가 섬세함을 엿볼 수 있는 조선조 중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표현한 건축물이다.
 

 
 
 
▼ 용인사를 당겨봅니다
 

 
 
▼ 선바위가 보입니다...
 

 
 
▼신구 2리(점촌) 버스정류장
 

 
 
▼ 선바위관광지 효공원을 지나며...
 

 
 
▼ 육교를 건너서...
 

 
 
▼ 선바위 관광지에 도착
 

 
 
▼ 관광지를 둘러봅니다...
 

 
 
▼ 영양고추 홍보전시관은 공사 중
 

 
 
▼ 선바위관광지 버스정류장에서 외씨버선길 4길 걷기를 종료하고...
 

 
 
▼ 버스를 타고 진보공용버스터미널로 갑니다...
 

 
 
☞ 영양군 농어촌 버스 운행시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