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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7 사월초파일 희양산 봉암사 (2023.5.27일) 본문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위치한희양산 봉암사(鳳巖寺)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성지 중 한 곳으로, 일반인에게는 연중 출입이 금지된 특별한 수행도량입니다. 유일하게 사월 초파일(부처님오신날) 단 하루만 경내가 개방되기에, 평소 접하기 어려운 그윽한 고찰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많은 참배객들이 이 날을 기다려 찾아옵니다.
저는 3년 전 희양산을 등반하며 하산길에 잠시 봉암사 입구에 들렀던 기억이 있었으나, 함께한 가족인 옆지기와 동서 부부는 이번이 첫 방문이라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날은 전국적으로 날씨가 흐리고 곳곳에 안개비가 내려 도보 이동에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그 또한 봉암사 순례의 분위기를 더욱 고요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봉암사까지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하긴 하지만, 사월 초파일 당일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참배객들로 인해 심한 정체가 발생합니다. 저희 일행도 그 상황을 예견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차량이 밀려 봉암사에서 약 5km 떨어진 하괴마을 입구에서 더는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차량을 그곳에 주차한 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상괴마을과 원북마을을 지나 봉암사까지 도보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안개비에 젖은 산길은 오히려 더욱 고요하고 정결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마치 고승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순례자의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봉암사 경내는 깊은 산중 속에 자리한 선종의 본산다운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 절은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도헌국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와 같은 고승들이 수행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조계종의 선종 맥을 잇는 데 중심 역할을 해온 봉암사는 오늘날에도 출가수행자들이 엄격한 정진을 이어가는 참선의 요람입니다.
경내를 둘러보던 중 공양간에서 제공된 자장밥은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한 끼는 몸을 녹이고 마음을 채워주는 진정한 공양이었고, 이와 같은 발상은 참으로 실용적이면서도 배려 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구경을 마치고 앞서 걸어온 약 5km의 길을 다시 내려오는 여정은 날씨와 피로 속에서 다소 지칠 수밖에 없었고, 동행하신 분들의 표정에도 고단함이 묻어났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날의 체험이 훗날 깊은 인상과 기억으로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 봉암사 - by 다음백과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로 879년(헌강왕 5)에 지증대사인 지선이 창건했다. 935년(태조 18)에 정진대사 긍양이 중창하고, 1431년(세종 13)에는 기화가 중수했다. 1674년(현종 15)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신화(信和)스님이 재건했다. 1915년 세욱(世旭)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극락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보물 제137호)·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문경 봉암사 3층석탑(보물 제169호)·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보물 제171호)·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보물 제172호) 등이 있으며 이 절의 서북쪽 계곡에 있는 거대한 암벽에는 높이 600cm의 봉암사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이 새겨져 있다.
▼ 봉암사 입구의 안내문
▼ 원로선원
▼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보물 제171호. 높이 500cm)
고려 초기의 고승인 정진대사 긍양의 사리탑으로 8각의 높은 지대석 위에 기단부·탑신부·상륜부가 차례로 놓여 있는 전형적인 8각원당형 부도이다.
탑신에 비해 옥개석이 크게 표현되어 전체적인 비례에서 다소 균형감을 잃고 있다. 기단은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졌는데, 하대석은 상·하 2단으로 하단의 각 면에는 안상을 1구씩 장식했으며 윗면에는 부연이 있는 갑석이 있다. 갑석 위에는 구름무늬가 조각된 1단 굄이 상단을 받치고 있다. 상단의 각 모서리에는 구름무늬로 장식된 기둥 모양을 세우고 그 사이에 구름무늬와 쌍룡문을 배치했다. 중대석은 1면에만 보개·보주·보산이 장식된 사리합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조각하고, 나머지 7면에는 특이한 꽃 모양의 안상을 조각했다.
상대석의 밑에는 2단의 받침을 각출하고 그 위로 앙련을 조각했다. 상대석 위에는 갑석이 덮여 있으며 그 위로 난간 형태의 높은 2단 받침대가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석은 기단부와 옥개석에 비해 폭이 좁아 불안정한 느낌을 주며 한 면에만 자물쇠가 달린 문비를 조각하고, 다른 면에는 우주만 새겼다. 옥개석은 처마 끝의 반전이 심하며 3단 받침과 부연이 받치고 있다. 윗면에는 기왓골은 없고 굵직한 우동만 표현되어 있다. 상륜부는 현재 앙화와 보륜만이 남아 있다.
이 부도는 정진대사원오탑비에 의해 965년(광종 16)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증대사적조탑과 양식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의 8각원당형 부도를 기본으로 했지만 불안정하고 둔중한 비례감, 기단부의 장식성, 옥개석의 귀꽃장식, 옥개석 윗면의 기왓골 표현이 생략된 점 등에서 시대적인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 상봉대사비
▼ 선열당(공양간)
▼ 자장면과 미역국 공양... 맛이 좋습니다...
▼ 봉암사 안내도
희양산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 지증대사가 처음 지었고, 2년 후인 헌강왕 7년(881)에 왕이 봉암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 절은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희양산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절의 이름이 봉암사인 이유는 희양산의 백운대 계곡에 계암이라는 바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봉암사를 처음 지을 때 닭이 그 바위 위에서 매일 새벽마다 시간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전국의 절에 대한 조선 시대의 기록물 '가람고'에는 봉암사 극락전에 신라 경순왕이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피난할 당시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극락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사라졌는데, 고려 태조 18년(935)에 정진국사가 다시 지었다. 조선 세종 13년(1431)에는 기화 스님이 절을 고쳐 지었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금강경오가해설의'를 썼다. 그 후 다시 불이 나서 무너져 건물이 없어졌다가 현종 15년(1674)에 신화 스님이 고쳐 지었고, 1915년 세욱 스님이 법당을 고쳐 지어 오늘날에 이른다.
봉암사의 부속암자로는 극락전 뒤편에 있는 동암, 채마밭에 맞닿아 있는 후휴암이 있다. 또한 희양산 아래에 있는 백운대, 백련암, 환적대, 월봉토굴, 용추암 등도 봉암사에 딸린 암자들이다.
현재 봉암사에는 수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국보로는 신라 말기 문신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문 중의 하나인 지증대사탑비가 있다. 보물로는 지증정대사탑, 봉암사 삼층석탑, 정진대사탑, 정진대사탑비, 봉암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마애미륵여래좌상이 있다. 그리고 경상북도 지방문화재로는 환적당 지경탑, 함허당 득통탑, 석종형부도, 일주문이 있다.
한편 봉암사는 한국 현대 불교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의의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1947년 10월 봉암사의 스님 10여 명이 모여서 만든 단체인 봉암결사는 '부처님의 법대로 살자'는 정신으로 3년간 다양한 개혁과 실험을 시도하였다. 이후 197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스님들이 봉암사로 모여들었고, 1982년 6월 조계종단은 봉암사를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였다. 현재 봉암사는 평소에는 참배객이나 관광객의 출입을 막고, 부처님 오신 날에만 문을 연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오직 참선과 정진에만 물두하는 간화선 수행원이 있는 절이다.
▼ 동방장
▼ 동방장 뒤로 보이는 대웅보전
▼ 산신각
▼ 극락전(보물 제1574호)
이 건물은 879년(헌강왕 5) 지증대사가 창건한 봉암사의 극락전이다. 935년(태조18) 정진대사가 중창 하였으나 임란을 거치면서 극락전과 일주문만 남기고 그 많던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중수공사가 있었는지 망와에 소화 16년(1941)이란 명문이 남아있다. 기단은 탑과 동일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상·하 갑석은 면석으로 처리하였고 기단바닥은 장방형 판석을 깔았다.
처마구성은 하층인 경우 각연을 사용하여 홑처마로 구성하고 상층은 겹처마로 처리하면서 처마곡을 크게 잡았다. 그리고 지붕은 모임지붕으로 처리하면서 정점에 화강석으로 만든 상륜부를 올려 탑의 요소를 모두 갖추게 하였다.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 대웅보전
▼ 지증대사 보호각
▼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봉암사 절에 있는 통일신라의 석비이다. 전체 높이는 412cm, 비신 높이는 273cm, 비신 너비는 164cm, 비신 두께는 23cm이다. 석비의 재질은 편마암(비신)과 화강암(귀부)이다. 조성연대는 신라 경애왕 원년(924년)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1월 4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15호로 승격되었다
▼ 지증대사탑(보물 제137호)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은 신라 후기의 고승 지증대사의 사리탑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봉암사에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 조사전
▼ 태고선원
▼ 금색전
▼ 금색전 뒤에 걸려있는 옛 대웅전 편액
금색전 뒤에 '대웅전' 편액이 걸려있는 이유는 대웅보전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금색전이 봉암사 대웅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삼층석탑(보물 제169호)
탑은 건물의 댓돌에 해당하는 기단부(基壇部), 탑의 중심이 되는 탑신부(塔身部),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석탑은 기단이 2단이나, 현재 땅 위로 드러나 있는 이 탑의 기단은 1단이다. 특이한 것은 지면과 맞닿아 있어야 할 탑의 받침돌 밑면에 또 하나의 받침이 있어 혹시 이것이 아래층 기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넓어 보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머리장식 모두가 완전히 남아 있어서 한국 석탑의 기준이 되는 귀중한 유례라는 점이다. 탑의 머리장식은 인도의 탑에서 유래했으며 인도탑의 소형화가 우리나라 탑의 머리에 적용되었다. 탑의 가장 윗부분에 놓이며 여러 개의 구성요소가 차례로 올려져 가장 장식적으로 마련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9세기 통일신라 헌덕왕(재위 809∼826)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기단 구조가 특이하고, 탑신의 각 층 비례와 균형이 적절하여 아름답다.
▼ 범종각
▼ 마애미륵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 일주문
▼ 고운 최치원 야유암역사공원의 지증대사 탑비 재현비
▼ 안개를 허리춤에 두르고 있는 희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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