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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권/전북

태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전주 경기전(2019.9.1일)

by 요다애비 2019. 9. 2.

전주 한옥마을을 둘러보다가 주변에 위치해 있는 경기전을 둘러보았습니다.

경기전은 태조의 어진이 모셔진 곳으로 넓진 않지만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 전주 경기전(全州 慶基殿)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퍼옴 >

 

사적 제339호. 지정면적 4만 9,527.4㎡. 1410년(태종 10)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계림·평양 등 세 곳에 창건하여 부왕인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셨다.

1442년(세종 24)에는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종전이라 불렀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4년(광해군 6)에 중건하였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 본전 가운데에서 달아낸 헌(軒), 본전 양 옆 익랑(翼廊)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두르고 있는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본전은 남향한 다포식(多包式) 맞배집 건물로, 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세웠는데 건물 안의 세번째 기둥렬[柱列]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壇)을 놓았다.

이 단 양 옆에는 일산(日傘)과 천개(天蓋)를 세웠다. 본전 앞에 내단 헌은 본전보다 한 단 낮게 쌓은 석축 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익공식(二翼工式) 포작(包作)을 짜올린 맞배지붕 건물이다.

본전과 헌이 이루는 구성은 왕릉에 제사를 지내려고 세운 정자각(丁字閣)의 구성과 같다. 또한, 본전 양 옆에는 익랑(翼廊: 문의 좌우편에 잇대어 지은 행랑) 2칸, 무(廡: 전각 주위에 세운 행랑) 4칸이 있다. 내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3문으로 그 양 옆에 익랑 2칸을 두었다.

외삼문은 앞면 3칸, 옆면 1칸인 맞배지붕 건물로 익랑을 두지 않았으며, 옆면 가운데에 사이기둥을 세워 삼문을 달았다. 현재 이곳에 있는 태조 어진은 1442년에 그린 것을 1872년(고종 9)에 고쳐 그린 것이다. 경기전은 그 주변 일대와 더불어 사적으로 지정된 외에 경기전 정전은 보물 제1578호로 지정되어 있다.

 

 

▼ 경기전 입구에 있는 하마비

 

 

 

▼ 경기전 입구

 

 

 

 

 

▼ 안쪽에서 밖으로 본 광경

 

 

 

▼ 홍살문과 입구

 

 

 

▼ 홍살문과 외신문, 내신문, 정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 내신문

 

 

 

▼ 정전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이 모셔져 있습니다.

 

 

 

 

 

 

▼ 태조 이성계의 어진

 

 

 

 

 

▼ 정전에서 들어온 입구를 본 광경

 

 

 

▼ 정전 앞 비둘기

 

 

 

▼ 정전 주변 풍경

 

 

 

 

 

▼ 예종의 태를 항아리에 담아 넣어둔 석실

 

 

 

▼ 전주사고

 

 

 

 

 

 

 

▼ 전주사고 내부 전시물들

 

 

 

 

 

 

 

 

 

 

 

 

 

 

 

▼ 조선왕조실록보전기념비

 

 

 

▼ 정전 주변 풍경

 

 

 

 

 

▼ 경기전 부속 건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