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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인권/경인

강화도 여행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강화고려궁지) 2021.3.20일

by 요다애비 2022. 3. 26.

교동도 관광을 하고 나서 다시 강화도로 돌아와 강화군청 근처의 이름난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과 용흥궁, 그리고 고려궁지는 가까이 접해있어 구경하기 아주 좋았습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역사가 깃든 곳들이라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하였습니다.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

 

    1890년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파된 후 1893년 영국인 왕란도 신부가 강화읍 갑곶리에서 회당 겸 사택을 매수하고 이곳에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1900년 현재의 한식 중층 건물을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재로 골격을 만들고 벽돌을 쌓아 올린 기와집으로 현존하는 한옥교회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내부는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외부는 동양의 불교사찰 양식으로 지어졌다. 동서양의 미를 조화롭게 섞어 매력과 담긴 역사를 알 수 있다.

   강화성당은 고요한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 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의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물양식은 한국정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 용흥궁

 

     조선후기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하였다. 원래 초가집이었으나 철종이 보위에 오르고 4년 만에 기와집으로 짓고 궁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은 살림집 형식으로 지어져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궁 안에는 철종이 살았던 집임을 기록한 비석과 비각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내전 1동과 별전 1동이 있으며, 잠저구기비와 비각이 세워져 있다.

 

 

 

 

▼ 고려궁지

 

    고려궁지의 출입문을 지나면 우물과 수령 400여 년의 느티나무 뒤로 강화유수부 동헌 건물이 있다. 동헌의 위쪽에는 고려궁지 발굴터가, 아래로는 복원한 외규장각이 존재한다. 고려시대 궁궐부터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구한말 외규장각 등에 얽힌 역사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