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수궁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임진왜란 뒤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로 왕의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1608년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이 이 곳에서 즉위하였는데, 그해 완성된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붙여주었다. 1623년에는 인조가 이 곳에서 즉위하였다. 또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1897년(고종 34)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 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비로소 궁궐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1905년 즉조당(卽祚堂)·석어당(昔御堂)·경효전(景孝殿)·함녕전(咸寧殿) 등이 중건되었다. 1906년 대안문(大安門) 이 수리된 뒤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하고 정문으로 삼았다. 1907년(순종 1) 순종 즉위 후 고종은 궁호를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1611년 ~ 1615년에는 조선의 정궁, 1897년 ~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다.
▶ 덕수궁 ~ 정동극장 ~ 구 러시아 공사관 ~ 서울시립박물관
▶ 경희궁
경희궁(慶熙宮)은 서울시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광해군 10년(1623년)에 건립한 이후, 10대에 걸쳐 임금이 정사를 보았던 궁궐이다. 서울시에 있는 5대 궁궐 중에서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으며, 새문안 대궐, 새문동 대궐, 아주개 대궐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의 이궁(離宮)으로, 경운궁(덕수궁)과 홍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지 7만 2천8백 평에 정전, 동궁, 침전, 별당을 비롯해서 모두 98채의 건물이 들어섰던 경희궁은 경복궁, 창경궁과 함께 조선왕조의 3대 궁으로 꼽힐 만큼 큰 궁궐이었으며 본래는 100여 동이 넘는 전각들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되어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정문이었던 흥화문과 정전이었던 숭정전, 그리고 후원의 정자였던 황학정까지 세 채에 불과하다. 5대궁 가운데 가장 철저히 파괴된 궁이다. 그나마 초석과 기단이 남아 있고, 뒤쪽에는 울창한 수림이 잘 보전돼 있어 궁궐의 자취를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일제 강점기에 경희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중학교를 만들었으며, 해방 후에 서울고등학교가 위치하였다. 경희궁터는 사적 제271호로 지정되었고, 1980년 서울고등학교가 서초구로 이전한 이후 서울 시립 미술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건물을 허물고 경희궁의 일부를 복원하였다. 서울고등학교의 별칭과 경희대학교의 명칭 등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 경희궁 ~ 빨간콩 하얀 콩 ~ 홍난파 자택 ~ 인왕길 ~ 사직공원
▶ 광화문~경복궁(국립민속박물관)
경복궁(景福宮)은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있는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이다. 궁의 넓이는 34만 3888㎡다. 경복궁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이다. 풍수지리적으로도 백악산을 뒤로하고 좌우에는 낙산과 인왕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탄 이후 그 임무를 창덕궁에 넘겨주었다가 1865년(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짓는 등 많은 전각들이 훼손되었으나, 1990년대부터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등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0년 현재 1차 복원사업이 완료된 상태다.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아미산 굴뚝 등은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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