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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일본여행 네째날(15) - 평화기념공원과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2024.4.14일)

by 요다애비 2024. 4. 23.

원폭돔을 구경하고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봅니다...
 
 
 
▼ 또다시 모토야스 다리(元安橋)를 건너 평화기념공원으로...
 

 
 
▼ 국립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 추도 평화 기념관
 

 
 
▼ 평화기념, 사망자 추모공간
  평화기념 사망자 추모공간은 원자폭탄 사망자를 엄숙히 추도하고 평화에 대해 생각하는 장소입니다.
 

 
 
▼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의 상공 약 600이터에서 폭 발하여 일신과 폭풍, 방사선이 발생했습니다. 원폭낙하 중심지 부근에서는 열선에 의하여 지표면의 온도가 섭씨 3,000-4,000도에 달했으며, 동시에 풍속은 초속 440미터에 이르렀습 니다. 또한 이 때 대량의 방사선이 방출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도시는 순식간에 파괴되었으며, 고귀한 수많은 생명은 무차별하게 빼앗겼습니다.

.... "무차별하게  빼앗겼다"  맨 마지막 문구가 좀 그러네요 ㅉㅉ
당시 일본이 침략한 각국의 고귀한 수많은 생명도 있음을 기억해야죠...

 

 
 
▼ 추모공간들을 둘러보고...
 

 
 
▼ 광장으로 나와...
 

 
 
▼ 기도의 동상(祈りの像)
 

 
 
▼ 평화의 연못(平和の池)
 

 
 
▼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広島平和記念資料館)
 

 
 
▼ 원폭의 어린이 동상(原爆の子の像)

신립자: 히로시마 평화를 구축하는 아동 학생회
제작자: 도쿄예술대학 교수 기구치 가즈오(菊池一雄)씨
이 상은 2살 때에 피폭당한 사사키 사다코(佐々木禎子)씨가 10년 후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동급생들이 원폭으로 사망한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위령비를 만들자고 호소하여, 전국의 3,200여개 학교와 전 세계 9개국으로부터의 기부에 의해 1958년 5월 5일에 완성된 것입니다.
상의 높이는 9미터로, 그 위에는 종이학을 받쳐든 소녀의 브론즈상이 세워져 있으며,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측면에는 소년과 소녀의 2개의 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상 밑에 놓인 석에는 「이것은 우리들의 외침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기도입니다. 세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 니다. 내부에 매달린 종에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유가와 히데키(湯川 秀樹)박사가 쓴 「千羽鶴(천마리학)」、「地に空に平和(땅에 하늘에 평화)」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종과 금색 학은 2003년에 복제된 것입니다                                                     -히로시마시-
 

 
 
▼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비(韓国人原爆犠牲者慰霊碑)
 
위령비의 유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히로시마에는 약 10만명의 한국인이 군인 속 징용공 동원학도 일반시민으로서 살고 있었다. 1945년 8월6일의 원폭투하로 인해 2만 여명의 한국인이 순식간에 소중한 목숨을 빼았겼다. 히로시마시민 20만 희생자수의 1할에 달하는 한국인 희생자수는 묵과할수 없는 숫자이다.
사한 이 희생자는 공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 영혼은 오래동안 구중을 헤메이고 있던차 1970 년4월 10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히로시마현본부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강요당한 영혼들을 편히 잠들게 하고 원폭의 참사를 두번 다시 되풀이 않기를 희구하면서 평화의 땅 히로시마의 일각에 이 비를 건립했다.
고향산천을 그리면서 이국땅에서 폭사한 혼령들을 위로함은 말할것도 없고 아직까지도 이해해 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 피폭자의 현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 하루라도 빨리 양심있는 지원이 실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인 희생자 위령제는 매년 8월 5일 이 장소에서 거행되고 있다.  
  -재일한국청년상공인연합회 및 유지일동-

 
 원폭희생자 히로시마 시민 20만에 비해 한국인 2만이 너무 많은 숫자 아닌가요!
그 당시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왜 히로시마에 거주하고 있었을까요?

 
 
▼ 외국 관광객이 위령비에서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영어는 아니고
 ... 한국인의 희생을  잘 알았으면...
 

 
 
▼ 원폭 공양탑(原爆供養塔)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의 투하(쇼와 20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에 의한 희생자 수만 기둥의 유골을 여기에 납입한다.
폭심지에 가까운 이 땅에서는 다수의 시신이 수용되어 화장이 이루어졌다.
쇼와 21년 1월 히로시마 전재 공양회가 창립되어, 5월 가공양탑, 7월 가납골당·예배당이 시민의 희망에 의해 건립되었다. 쇼와 30년 7월 피폭 10주년을 기하여, 히로시마시가 중심이 되어 지하에 납골실을 가지는 현 공양탑이 건립되어, 각처에 산재하고 있던 유골을 여기에 납입했다.
매년 8월 6일을 중심으로 히로시마 전재 공양회를 시작으로 히로시마현 종교 연맹 및 각 종파에 의한 위령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히로시마 전재 공양회-
 

 
 
▼ 평화의 종(平和の鐘)
우리는 이 종을 히로시마 열망의 상징으로 바칩니다. 모든 핵무기와 전쟁이 사라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라들은 진정한 평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귀에 닿을 수 있도록 이 노래가 땅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평화를 사랑하는 기부자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두근거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친구들. 앞으로 나아가서 평화를 위해 이 종을 울리십시오!
이 취지, 목적을 이해하고 평화에 대한 소원을 담아 주십시오.
-쇼와 39년 9월 20일 건노 히로시마 비원의 모임-
 

 
 
▼ 또 다른 평화의 종
      평화의 종
평화의 종은 원폭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를 염원하기 위해 194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수집한 금속으로 주조한 이 악기는 한때 평화 기념식에서 울렸습니다.
그 위에는 No More Hiroshimas라는 문구와 잘 알려진 평화의 상징인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직경: 1.2미터 // 높이: 1.4미터 // 무게: 800kg
 

 
 
▼ 평화기념공원에서 히로시마현립 종합체육관(広島県立総合体育館)을 지나서 히로시마성으로...
 

 
 
※ 일본어 구사능력이 없어서 여행 중 일본 내 지명이나 설명은 Google 맵과 번역기를 이용하였으며, 번역이 다소 어색하고 착오도 있을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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