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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둘레길/외씨버선길(완보)

외씨버선길 5길 (오일도 시인의 길) [영양] 선바위 관광지 ~ 영양전통시장 (2024.4.28일, 오전)

by 요다애비 2024. 4. 29.

차일피일 미뤄왔던 외씨버선길을 오늘 걸었습니다. 홀로 부산에서 외씨버선길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번 갈 때 많이 걷자는 목표를 잡고 외씨버선길 5길(11.5Km)과 6길(13.5Km)을 동시에 걸었습니다.
새벽 5시 집에서 출발하여 영양버스정류장 근처에 차를 주차, 8시 10분에 선바위관광지로 가는 버스에 탑승, 8시 20분경에 선바위관광지에 하차하여 본격적으로 외씨버선길 5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외씨버선길 5길은 항일 시인이자 국내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일도 오희병(1901~1946)선생이 나고 자란 자연에서 동양적인 서정성을 노래한 시들과 함께 소박하고 아름다운 야생화와 어우러진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코스 초반부에는 선바위 관광지에서는 남이포 절벽 앞에 거대한 촛대처럼 우뚝 서 있는 바위로 선바위(신선바위)를 볼 수 있고, 수직 절벽 아래로 흐르는 반변천변과 곳곳에서 사과꽃과 야생화들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중반부는 오일도시공원 등 감천마을을 구경할 수 있으며, 감천1교와 세월교를 건너 진막골 입구에 까지는 무리 없이 진행하게 되며, 하반부는 다소 가파른 오름구간인 진막골을 힘들게 올랐으며, 이어서 성황당과 무량사를 지나서 영양전통시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외씨버선길 5길 개념도>

 
 
 
<외씨버선길 5길 기록>
 

 

<외씨버선길 5길 동영상>


 
▼ 영양버스정류장 시간표
     진보행 8시 10분 버스 탑승
 

 

 
 
▼ 선바위관광지 정류장에 하차하여 외씨버선길 5길, 오일도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
 

 
 
▼ 관광지를 지나며...
 

 
 
 
▼ 반변천
     반면천은 일월산(해발 1,219m) 동쪽 윗대티 부근에서 발원하여 3개 읍면 (邑面)을 지나 13개의 지천(川)과 합류하는 총길이 109.4km의 지방 2급 하천이다. 발원지에서 남류(南流), 일월면 장군천을 만나 차츰 강의 형태를 보이고 영양읍을 지나 입암면 남이포(南怡浦)에서 동천과 합류하면서 수량 (水量)이 풍부해지고 깊은 소(沼)를 형성하며 우리 군 마지막 지점인 입암면 홍구리를 뒤로하고 청송군(青松)을 지나 임하댐을 거쳐 낙동강(洛東江)으로 흘러 들어가는 낙동강의 동쪽 원류(原流)이다.
반변천은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대천(川)이라 기록되었으며 태백산맥의 남북방향을 따라 깊은 협곡(峽谷)을 이루며 흐르는 -감입곡류(嵌入曲流) 형으로 하천주위에 비옥한 평야를 형성해 풍족한 농산물을 제공하고,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청록파 조지훈시인 등 여러 문인들을 탄생시켰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생태계(生態系)의 보고(寶庫)로 영양고유의 토종 여종, 수달 및 희귀 동식물의 서식장소 제공 등 생태적으로 건강한 하천으로 우리 곁을 묵묵히 흘러가고 있는 영양군민(英陽郡民)의 젖줄이기도 하다.
이렇듯 반변천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요, 역사어고, 환경이기에 반변천의 보전만이 우리 영양의 꿈꾸는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라 여기고 더욱 소중히 가꿔야 할 것이다.

 

 
 
▼ 선바위... 우뚝 솟은 바위
 

 
 
▼ 선바위와 남이포 남이정
 

 
 
▼ 석문교
 

 
 
▼ 산촌생활박물관 쪽으로...
 

 
 
▼ 전통정원 서석지 이야기길... 이런 길도 있군요...
 

 
 
▼ 출렁다리를 건너서...
 

 
 
▼ 산적 주막
 

 
 
▼ 또 다른 출렁다리...
 

 
 
▼산촌생활박물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네요...
 

 
 
▼ 산촌생활박물관의 전통문화공원을 오일도 시공원과 함께 별도로 포스팅합니다...
 

 
 
▼ 영양산촌생활박물관 입구
 

 
 
▼ 사과꽃
 

 
 
▼ 금낭화
 

 
 
▼ 겹벚꽃과 사과나무
 

 
 
▼ 홀로 밭일하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 반변천
 

 
 
▼ 수로 옆 나무데크를 따라...
 

 
 
▼ 낙석의 위험구간도 있습니다...
 

 
 
▼ 하늘에는 눈 오듯 하얀 씨앗이 떠 다닙니다...
 

 
 
▼ 애기똥풀길을 지나서...
 

 
 
▼ 감천교
 

 
 
▼ 학초정
 

 
 
▼ 학초정 및 정침(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이 건물은 조선 효종 때 지은 정자와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자는 삼수당이라 했다가 1910년경에 소유주가 바뀌면서 학초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뒤에는 갓등산이 둘러 있고 앞에는 반변천이 흐르는 곳에 서남향으로 자리 잡은 이 건물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정자가 있고, 그 안쪽에 살림집이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2칸의 온돌방과 4칸의 대청마루로 되어 있는데 세부건축 양식은 일반적인 조선중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살림채는 'ㅁ자'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전면이 양측으로 돌출한 형태로 영남 내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당이 있었으나 철거된 것을 제외하고는 이 집은 조선 시대 이 지방 상류계층의 주택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 감천교 주인증 사진촬영지점... 인증사진을 찍고...
 

 
 
▼ 버드나무(수양버들)에 흰꽃이 피었네요...
 

 
 
잠수교 입구
 

 
 
 잠수교
 

 

 
 
부부 조사가 한가로이 고기를 잡고 있네요...
 

 
 
강아지 목욕하는 날... 아직은 물이 차가울 텐데... 강아지 표정이 애처롭네요... ㅎㅎ
 

 
 
측백나무 수림 지역인 모양인데... 못 보고 지나쳤습니다...
 

 
 
  감천마을 초입
 

 
 
낙안오씨(樂安吳氏) 오희집(吳熙緝)의 효자각(孝子閣)
     효자각 복원 내력
효자(孝子)증(贈) 통홍대부(通胡大夫) 사헌부(司憲府) 강창(監察) 오희집(吳熙)은 본관(本貫)은 낙안(安)이요 자는 치학이니
통정대부(通政大夫) 칠원현감(漆原縣監) 오시(時)의 후손이요 오용휴(休)의 (吳權)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재에(才藝)가 비범(非凡)하고 효성(孝)이 극진하였다. 부친(父親)이 증명(重病)으로 三年간 세속하여 몇 번 사경(死地)에 이르러 백약(藥)이 무효(無)였다. 그런데 인육이 좋은 약(藥)이라는 말을 듣고 즉시 자기 허벅지 살을 잘라서 모르게 드렸더니 효험(臉)이 있어 二十年이나 수명(壽命)을 연장(年長)하였으며 또 모친(說) 병이 극심(極)하여 생명(生命)이 위독(危篤)하자 단지(斷)를 하여 피를 마시게 하여서 목숨을 五年간이나 연장(年長)하였으니 돈독(敦篤)한 효성(誠)이 천성(天性)에서 나온 것이라 하였다. 그의 효성(城)을 기린 도내 (道内)의 유림(林)에서 상주(임금에게 알림) 하여 고종(高宗) 二四年(서기 一八八七年) 四月에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司憲府) 남탕(監察)을 추증하고 나라에서 효자 오회집 정려각(閣)을 세웠으나 오랜 세월에 정려각은 훼멸 되고 교지(敎旨)와 주춧돌만 남아있어 "효" 사상(思)이 패퇴함을 안타까워 복원(復元)을 염원(念願)하던 중 감찰공(監察公)의 족손(孫) 오민호(吳元浩) 옹(翁)이 꿈에 계시(示)를 받아 효자각 (李閣)을 세워 단청(靑)을 복원(復元)하고 그 옆에 마을의 안녕(安寧)과 주민의 건강 (健康)을 위해 석탑(石塔)도 세웠다.
                                          二〇〇九年十一月
                                         낙안오씨(樂安吳氏) 문중(門中)백

 
 
삼천지
 

 

 
 
  서정시인 오일도의 고향 감천마을
      맛있는 물이 샘솟고 감나무가 많아 감천이라 불린다. 낙안 오 씨들이 400여 년을 살아온 집성촌이며 서정시인이자 항일시인인 오일도 (1901~1946)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시인의 생가는 감천마을 가운데 자리한 44칸 기와집으로 경북 문화재자료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에는 유서 깊은 고택의 정취에 어울리는 영양 문학테마공원과 시인의 작품인"저녁놀"이 있는 오일도시비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오일도 시공원은 별로로 포스팅합니다...
 

 
 
오일도 생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애국시인인 일도 오희병1901~1946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오일도는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일본의 릿교대학 철학부를 졸업하였다. 1925년에 문예월간지인 조선문단에 "한가람 백사장'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5년 2월에는 시전문지인 시원을 창간하여 5호까지 출간하면서 한국현대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노변의 애가",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등이 있다. 이 가옥은 조부인 오시동이 조선 고종 1년 1864에 건립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의 자형 건물인 정침과 5칸 규모의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 숲 속으로...
 

 
 
▼ 양심장독대
 

 
 
▼ 비어 있네요...
 

 
 
▼ 능선으로 오르며...
 

 
 
▼ 조개나물
 

 
 
▼나무다리를 건너서...
 

 
 
▼ 봄맞이
 

 
 
▼ 영양로로 내려와서...
 

 
 
▼ 감천 1교 쪽으로...
 

 
 
▼ 감천 1교를 건너서...
 

 
 
▼ 원주평교
 

 
 
▼세월교는 물에 잠겨있네요...
 

 
 
▼ 뒤돌아보고...
 

 
 
▼ 진막골 완주인증 사진촬영지점
 

 
 
▼ 진막골 경로당을 지나서...
 

 
 
▼ 이곳부터 가파른 오르막 산길이 시작됩니다...
 

 
 
▼ 졸방제비꽃
 

 
 
▼ 붓꽃
 

 
 
▼ 고갯마루에 올랐습니다...
 

 
 
▼ 전망쉼터
 

 
 
▼ 성황당 쪽으로 내려와...
 

 
 
▼ 성황당
 

 
 
▼성황당과 영양산성
 

 
 
▼ 시멘트길을 따라서...
 

 
 
▼별천지 영양
 

 

 
 
▼ 무량사
 

 
 
▼ 다시 숲 속으로...
 

 
 
▼ 중앙로로 하산
 

 
 
▼ 중앙로를 따라서...
 

 
 
▼영양중고등학교
 

 
 
▼ 영양군 소재지
 

 
 
▼ 영양전통시장 앞 외씨버선길 영양객주
 

 
 
▼ 외씨버선길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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