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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둘레길/남해바래길

남해바래길 지선 01코스, 읍내바래길 (남해공용터미널 ~ 오동리다랭이논 ~ 남해공용터미널) 2024.7.28일 오후

by 요다애비 2024. 7. 30.

오전에 남해바래길 15코스를 걷고 나서, 오후에는 지선 01코스 읍내바래길을 역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남해바래길 지선 1코스는 남해공용터미널에서 남해읍과 망운산 아래의 아산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써, 바다에서 벗어나 벼농사를 짓는 다랭이논과 남해향교, 유배문학관 등 남해읍의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주변에 볼거리는 소소하게 많았지만 한낮의 땡볕을 피할 곳이 없어 다소 지쳤던 코스였습니다.
걷기를 마친 후 남해공용터미널에서 16:30분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귀가하였습니다
 
 
☞ 아래 지선 01코스 읍내바래길 안내는 남해바래길 홈피에서 퍼옴
 
▶지선 01코스 읍내바래길◀ 
▶총 거리 : 10km
▶걷는 시간 :약 3시간 30분 내외 (쉬는 시간 포함 )
▶걷기 난이도 :★★☆☆☆(쉬워요)
▶걷는 경로 (단위 km) : 남해공용터미널 ←0.6→ 남해향교 ←0.2→ 남해성당 ←0.2→ 봉황산공원 ←0.2→ 학림사 ←0.2→ 봉황산숲길 ←0.4→ 법흥사 ←0.6→ 아산저수지 ←0.3→ 오동리다랭이논 ←2.3→ 아산 ←1.7→ 남산공원 ←1.3→ 유배문학관 ←0.7→ 청년창업거리 ←0.8→ 남해어시장 ←0.5→ 남해공용터미널

▶코스개요: 남해바래길 2.0 지선 1코스 ‘읍내바래길’은 남해공용터미널을 시작으로 남해향교를 지나 남해성당을 거쳐 봉황산 나래숲공원을 지난다. 백로가 많아 이름 지어진 학림사를 지나 봉황산 숲길을 지나면 남해읍 최고의 경관으로 불리는 아산저수지 둑길을 걷는다. 이후 만나는 오동리다랭이논 곁을 지나 마을길을 지나면 읍민들의 쉼터인 남산공원을 지나 유배문학관에 다다른다. 이후의 길은 청년창업거리와 남해어시장을 지나 다시 시작점인 남해공용터미널로 돌아온다.
 
 
 
<남해바래길 지선 01코스 기록>
 

 
 
▼ 12:25분경, 남해공영터미널 앞의 남해바래길 안내판에서 지선 1코스 걷기 시작
 

 
 
▼ 남해전통시장 안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 회나무 소원거리
 

 
 
▼ 노거수
     수종: 회화나무
•소재지 : 남해군 남해읍 남변리 349-1
•수령: 약 450년 (2024년 기준)
• 수고: 10.5m
• 가슴높이둘레 : 600cm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종으로 나무 높이가 30m, 직경이 2m까지 크게 자랄 수 있어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거목 중의 하나이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쯤인 8월 초에 황백색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어 꽃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핀다. 특히 빨리 자라면서도 수형이 아름답고 깨끗한 품격을 지니고 있으며, 다듬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는 나무라서 조경수나 가로수로 제격이다

 

 
 
▼ 진주세무서 남해민원실 담을 지나서...
 

 
 
▼ 해양초등학교
 

 
 
▼ 유배문학관 쪽으로...
 

 
 
▼ 남해유배문학관
 

 
 
▼ 서포 김만중 상
 

 
   
 
▼ 김만중(金萬重・1637~1692)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함께 한국 3대 고전문학 가로서, 충(忠)·효(孝)·문(文)의 대표인물로 손꼽힌다. 서포 김만중(1637~1692)의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숙종 15년(1689) 3월 7일에 남해로 유배되어 숙종 18년(1692) 4월 30일에 56세의 일기로 남해 노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전해진다.
서포 김만중은 당쟁 속에서도 송시열 등과 같이 선비의 골은 정신으로 직언하는 충신이었고 지극한 효로서 모친을 봉양하는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

 
▼ 思親詩(사친시)
今朝欲寫思親語(금조옥사사친어)
字未成時淚已滋(자미성시루이자)
幾度滿毫還復獅(기도유호환부척)
諜中應缺海南詩(집중응결해남시)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립다는 말 쓰려하니
글자도 되기 전에 눈물 이미 흥건하네
몇 번이나 붓 적셨다가 도로 던져 버렸나
문집에서 남해에서 쓴 시는 응당 빠지겠네.
*서포집에는 己巳九月二十五 (기사년 9월 25일)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지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애절해 사천시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 유배문학관 뒤쪽으로 나와 남산근린공원으로...
 

 
 
▼ 유배문학관 안내판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유배와 유배문학에 대한 전문 공간입니다.
주제별 전시관을 통해 유배문학에 대한 체계 적인 이해와, 다양한 체험 전시 외 학습 프로 그램을 통해 관람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여 우리 문학관을 찾는 분을 위해 다양하게 준비하였습니다.
남해유배문학관은 사람, 자연, 문학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야외 전시, 영상, 모형 등 3차원적이며 현대적 개념의 매체를 통해 전시실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 남산근린공원 입구,  3.1 독립운동 기념비
    국가보훈부 현충시설 43-1-40호
소재지 : 경남 남해군 남해읍 서변리 산 1-1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순식간에 파도처럼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남해에서는 2일에 설천면 남양에서 비롯되었고 4일에는 읍내를 중심으로 전군(全郡)에 일제히 일어났다. 남해는 충무공이 순국의 피를 흘린 성지(聖地)라 그날 외치던 민족의 부르짖음은 망운산과 금산에 메아리쳤고 남해의 물결조차 들끓게 했다. 그러나 일제의 포악한 관헌은 총칼로써 민중을 위협했고 앞장섰던 인물들을 모조리 체포해 가 많은 독립운동자들이 옥사 또는 복역을 하는 등 비통한 역사를 겪었다. 이 기념비는 피 흘린 독립운동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정신을 본받고자 남해 군민의 정성을 모아 돌탑을 쌓아서 1968년 3월에 건립되었다.

 

 
 
▼ 비석
 

 
 
▼ 공원을 지나며...
 

 
 
▼박 씨 남해군 대종친회
 

 
 
▼ 아이나라 쪽으로...
 

 
 
▼ 남해유치원 쪽으로...
 

 
 
▼ 망운로길을 따라서...
 

 
 
▼ 붉은 고추도 구경하고...
 

 
 
▼ 읍내를 뒤돌아보고...
 

 
 
▼ 아산저수지 쪽으로...
 

 
 
▼ 덤봉
     덤붕 '웅덩이'의 방언
경지정리가 실시되기 이전 관개시설이 부족하던 시절에 논 안이나 주변에 있던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작은 연못처럼 생긴 것.
둘레는 우물보다는 훨씬 크며 깊이는 1m 이상이다. 가장자리는 돌로 쌓아놓는다.

 

 
 
▼ 오동회관
 

 
 
▼ 외동회관 정자 옆 고목
 

 
 
▼지선 1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습니다...
 

 
 
▼ 오동마을 버스정류장
 

 
 
▼ 아산저수지
 

 
 
▼ 아산저수지 둑방길을 지나서...
 

 
 
▼ 망운로에 합류
 

 
 
▼ 남해향교 쪽으로...
 

 
 
▼ 오동마을 표지석과 아산저수지 둑
 

 
 
▼ 봉황산 나래숲 공원을 지나서...
 

 
 
▼ 법흥사
 

 
 
▼ 봉환산 나래숲 공원을 내려와서...
 

 
 
▼ 화전로길 끝지점이 오늘의 종점 남해공용터미널이 있는 곳입니다...
 

 
 
▼ 남해성당
 

 
 
▼ 남해향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Gyeongsa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향교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지방에서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기 위해 국가가 세운 교육 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유교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주로 가르치는 곳이었으며,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도 사용되었다. 남해향교는 세종 32년 (1450)에 세워진 향교이며, 지금은 봄과 가을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외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관리사, 홍살문 등이다. 명륜당 등 학문을 배우는 곳을 앞에 두고, 대성전을 비롯하여 제사를 지내는 곳을 뒤에 둔 전학후묘(강원) 구조로 되어 있다.
남해향교는 원래 봉강산 아래에 있었다. 명륜당과 대성전이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 조선 헌종 10년(1669)에 대성전을, 숙종 4년(1678)에 명륜당을 다시 지었다. 고종 29년(1892)에 대성전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1917년에 명륜당과 나머지 건물들도 모두 옮겼다. 서재의 남쪽에 담장을 붙여 돌단을 쌓은 성생단(省)은 살아 있는 돼지 등을 검사하는 곳으로 다른 향교에서는 많이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또한 이곳에는 당시 지역 유학자나 유학을 공부하는 유생 등의 인적 사항을 기록한 명단이 보존되어 있다. 이는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된다.

 



 
 
▼ 오후 4시, 남해공용터미널에 도착, 남해바래길 지선 01 코스 걷기 종료
 

 
☞ 오후 4시 30분, 남해공용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에 탑승하여 부산으로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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