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에는 지나온 세월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세 분'이 계셔서 나그네의 발길을 이끈다.
수백년 된 두 그루 은행나무가 가지런히 서서 허공을 떠 받치듯 우람하게 서 있다. 그 당당한 기상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한평생 청정한 수행을 쌓아 가면 이런 당당한 기상을 지니게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허구한 세월을 거쳐 오면서 去巨樹는 이 도량에 몸담아 수행하는 사람들을 낱낱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 나무 안에는 이 도량의 지나온 자취가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우리 귀가 열린다면 그 은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
운문사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만세루 곁에 청정하게 살아계시는 나이 4백 살이 넘는 소나무 한그루를 친견할 수 있다. 이 소나무는 세월의 풍상에 꺽임이 없이 영원한 젊음을 내 뽐고 있다. 동구에 있는 다른 소나무들은 가지마다 겨울을 그 잎에 달고 있는데 이 소나무 만은 전혀 계절의 바람에 동요됨이 없이 청정하고 청정할 뿐이다. '영원한 젊음'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4백 살의 젊음 앞에 숙연해진다. 이 소나무를 두고 사람들은 가지가 가로 뻗어 옆으로 처졌다고 해서 '처진 소나무'라 하고, 키는 작고 가지가 가로 뻗어 옆으로 퍼졌다고 해서 盤松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 소나무는 오래 살다 보니 그 도량에서 수행하는 효성스러운 사람들 한테서 한 해에 막걸리 열두말씩을 공양받는다. 주량이 대단하다. 그런 주량의 영향 덕인지 감기 몸살 한 번 치르지 않고 오늘처름 저렇게 정정하시다. 그래서 酒松이란 별명도 얻게 되었다.
나는 운문사에 들를 때마다 맨 먼저 비로전 부처님께 문안인사를 드린다. 일반 불상의 전형에서 벗어난 그분만의 독특한 형상에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다. 얼굴 모습도 여느 불상과는 달리 시골의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표정이고, 오랫동안 가부좌로 앉아 계시니 다리가 저려 슬그머니 바른쪽 다리를 풀어 놓은 그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다.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이런 불상은 아무데서나 친견할 수 없다.
운문사의 은행나무와 반송과 비로전 부처님이 부르시기에 이따금 나는 그곳에 간다.
-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 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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