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1호, [경주향교 대성전] 보물 제1727호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려시대 때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신문왕 2년(682) 국학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한다. 그 뒤 1492년(성종 23) 경주부윤 최응현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성전이 소실되어 위패를 도덕산 두덕암으로 옮겼다가 1600년(선조 33) 경주 부윤 이시발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위패를 환안하였다. 1614년(광해군 6) 부윤 이안눌이 명륜당을 중수하고 동서 양무를 중건하였으며, 1668년(현종 9)에 보수하였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전사청·내신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에는 5성,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경주 교촌마을>
중요민속자료 제27호인 경주최씨고택과 중요무형문화재 제86-다호인 경주교동법주가 자리 잡고 있는 교촌마을은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 특히 최부자집에서 가훈처럼 내려온 원칙인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최 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곳에는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부근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 계림과 내물왕릉, 경주향교,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재매정이 있다.
<월정교>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복원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63-1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고증을 거쳐 2018년 4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1984년 11월 26일부터 1986년 9월 8일까지 진행된 두 번의 복원설계를 위한 자료수집과 발굴조사를 통해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공사로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의 교량 복원이 완료되었다. 2016년 4월부터 시작된 다리 양 끝의 문루(門樓) 2개 동을 건립하는 공사를 진행하여 2018년 4월 준공되었다.
문루 2층에는 출토된 유물과 교량의 건축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전시관을 설치하며,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과정 관련 영상도 상영한다. 경주시의 신라 왕경 8대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 중에서 첫 번째로 완성된 월정교 복원사업은 이후 진행될 황룡사, 신라왕궁, 쪽샘지구, 신라방 등의 복원 정비공사에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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