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맷길 7코스 2구간은 순방향은 주로 내리막 코스라 쉬운 편이지만, 역방향은 주로 오르막 구간이 많아 다소 어려운 코스입니다.
갈맷길 7코스 2구간 상현마을에서 시작하여 범어사와 금정산성 북문을 지나서 동문에 이르는 13Km의 코스입니다.
이 구간 중에는 부산의 명소 범어사를 구경할 수 있으며, 금정산성 북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장쾌한 능선을 걸으면서 부산 전체를 조마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7코스 2구간 소개>
산성고개에서 동문을 지나 부채바위, 제4망루, 원효봉, 북문에 이르는 능선길은 부산 전체를 조망하는 시원한 길이다. 금정산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문루 4개소, 망루 4개소가 소재해 있다. 산성 내 산성마을에서 생산되는 막걸리와 염소고기는 그 맛이 뛰어나 등산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북문 고산습지에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있는 계곡을 따라 내려와서 팔송까지 금어동천, 비석골 서어나무 숲을 호젓이 걷는 옛길이 펼쳐진다. 노포역에서 연꽃농장을 지나면 수영강 중상류를 따라 회동수원지 상현마을에 이른다.
<갈맷길 7코스 2구간 기록>
▼ 상현마을 갈맷길 도보인증대에서 7코스 2구간을 역방향으로 출발
▼ 상수원관리소를 지나서...
▼ 향나무길
▼수영강을 바라보고...
▼ 스포원파크 쪽으로...
▼ 인도를 바라보고...
▼ 갈맷길 7-2구간 안내판
▼ 수영강교 아래를 지나서...
▼ 철마산을 바라보고...
▼ 한물교와 파크골프장
▼ 식물과 곤충들을 채집 중이네요
▼ 정겨운 광경을 구경하고...
▼ 스포원파크 입구의 갈맷길 안내판
▼ 부산 컨트리클럽 입구
▼ 금정구 친환경농산물 급식지원센터
▼ 부산종합버스터미널
▼ 터미널 앞 조경가계 앞을 지나서...
▼ 범어사 쪽으로...
▼ 작장마을
▼ 작장마을터널 통과
▼ 범어사 쪽으로...
▼ 용천사
▼ 철마산을 바라보고...
▼ 숲길을 따라서...
▼ 금정산 숲속둘레길과 중첩구간을 지나며...
▼ 범어사로에 합류
▼ 도심지를 바라보고...
▼ 자장암 입구
▼ 범어사 일주문
▼ 범어사 입구
▼ 갈맷길 도보인증대
▼ 범어사로 오르며...
▼ 금정총림 범어사
금정총림金井林 범어사梵魚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로서 10개의 산내 암자와 2백여 개의 산외말사로 이루어진 영남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18년 678 의상대사의 화엄십찰 중 하나이며 화엄경의 이상향인 화장세계 구현과 왜구를 막는 호국 사찰로 창건되어졌다. 흥덕왕 10년 835에 크게 중창되었으며, 조선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묘전화상과 그 문도 들에 의해 복구되었다.
숙종 29년 1703 금정산성술井山城 축조 후 승군사령부로서 성곽 수비를 맡는 등 지역방위체제의 일익을 맡았다. 구한말에는 선풍 진작을 통한 민족불교 운동의 구심점으로서 선찰대본산利大本山이 되었고,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는 범어사 학림의거學林義를 주도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쳤다. 1950년대는 동산대종사가 주도한 불교 정화운동의 중심지로서 한국 근대 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등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오늘의 종합 수행 도량인 총림으로 발전해 왔다.
▼ 범어사 경내를 지나며...
▼ 범어사 당간지주
옛날에는 사찰의 입구에 도량의 경계를 표시하는 깃발이 있었다. 당이라고 불리는 이 깃발은 나무, 철 등으로 만들어진 기둥을 뜻하는 당간幢竿에 달렸으며 당간은 한 쌍의 돌기둥 즉, 당간지주幢竿支柱에 의해 고정되었다. 고려 시대 말기 또는 조선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조계문
▼ 천왕문
▼ 불이문
▼ 보제루
▼ 대웅전
▼ 삼층석탑과 관음전
▼ 석등
▼ 관음전
▼ 지장전
▼ 팔상전
▼ 산신각
▼ 화엄전과 팔상전
▼ 범어사를 나와서...
▼
▼ 범어사 돌바다(암괴류)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에서 범어천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암을 지나 금정산성 북문으로 가는 길까지 지천으로 널려있는 엄청난 바위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돌바다(암괴류)의 폭이 70m 정도 되고 산사면 방향으로 길이 2,500m 족히 넘어 보이는 바위들이 많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돌바다(암괴류)는 주로 바위가 물리적 화학작용에 의해 절리(바위에 갈라진 틈)를 따라 물이 스며들면 얼고 녹고 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어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중력에 의해 주저앉으면서 만들어진다. 돌바다(암괴류) 밑으로 물이 흘러 대성암(大聖庵) 각해선림 구들장 아래로 숨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선의 경지에 불심을 듣는다 해서 (금정 8경) 중 하나인 '대성은수(大聖隱水)」라 하였다.
▼ 금정산 제2 등산로를 따라서...
▼ 북문 쪽으로...
▼ 금강암 입구 통과
▼ 금정산성 북문에 도착
범어사에서 서편으로 1.6km,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 오르는 자리에 있다. 금정산성의 4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 이 성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규모도 다른 성문보다 작다. 육축 상부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익공계 우진각지붕 단층문루이며, 성문의 폭은 정면 250cm이고 측면은 350cm이다. 성문 광장 세심정 일대는 원효대사께서 화엄경을 설파한 곳이라 「화엄벌」이라 하였으며 이곳은 금정산성 방어를 위한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등의 스님을 훈련시켜 승병 양성을 한 승병 훈련장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범어사 3월 만세 운동(1919년) 거사를 위해 기미독립선언서와 독립운동 관계 서류를 가지고 경부선 물금역에 내려 금정산 고당봉을 넘어 청련암으로 온 통로도 북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북문에서 잠깐 쉬었다가 동문 쪽으로 다시 출발...
▼ 산성길에서 야생화들을 감상하며...
♣ 철 잃은 철쭉...
♣ 개쑥부쟁이
♣ 구절초
♣ 이고들빼기
♣ 미역취
♣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을 뒤돌아보고...
♣ 미륵사와 미륵암
▼ 원효봉
원효봉(元曉峰)(687m)은 금정산 동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서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와 빛깔로 수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 '으뜸의 새벽'이란 뜻으로 원효봉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제4 망루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봉우리이다. 원효봉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김유신 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 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랫동안 서 있다가 선 채로 소변을 보았는데 낭도 하나가 그 자리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 소나무는 오랜 세월 비바람을 이겨내고 푸르름을 뽐내었는데 사람들은 김유신 장군이 서 있던 바위를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 해운대지역을 내려다보고...
▼ 강서구 지역...
▼ 산성마을과 백양산 쪽...
▼ 회동저수지
▼ 양산 방면...
▼ 김유신 솔바위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금정산 고당봉에서 오랫동안 수련을 쌓았다. 어느 날 고당봉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와 원효봉 부근에서 수련을 하였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에는 높은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 틈서리에는 어른 키만 한 땅딸보 소나무가 박혀 있다 이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곳에서 김유신아 낭도 훈련할 때, 이 바위 위에서 부동자세로 몇 십 시간 서 있는 훈련을 하다가 선 채로 소변을 싸 버렸다. 그것을 본 한 낭도가 그 자리에 아기소나무 한그루를 심어 놓았다. 이 소나무가 1천 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지금도 그 푸름을 뽐내고 있다.
▼ 제4망루
▼ 걷기 좋은 솔나무 숲을 지나서...
▼ 금정산 동문에 도착
▼ 금정산 동문
동문은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잘록한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이 아주 뛰어나고 동래읍성에서 가장 근접하기 쉬워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 달 만에 동문이 완성되었다"라고 한다.
동문은 홍예식문(虹霓式門: 무지개 형태)으로 문폭은 300cm, 홍예의 높이는 340cm이다. 동래부사 정현덕 (재임 1867~1874)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을 쓰고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두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인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금정산 동문 도보인증대에서 갈맷길 7코스 2구간 걷기 종료
▼ 버스를 타기 위해 산성로로 이동하며...
♣ 금정산(金井山)
금정산(金井山)은 부산의 진산으로 주봉인 고당봉(801.5m)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 남으로 상계봉(638m)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파류봉 등의 많은 봉우리와 나비바위, 부채바위 등 천구만별의 기암괴석으로 되어 있는 명산이다.
동쪽으로 금정구, 서쪽으로 북구, 남쪽으로 동래구, 북쪽으로 경남 양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적 제215호 금정산성(18,845m)이 능선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의 유래는 "산마루에 우물이 있어 한 마리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 속에 놀았다"하여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전하고 있다. (東國輿地勝覽 권 23 東來縣 山川條)
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가 뒤덮고 있다 하여 천구만별(千龜萬鼈)이라고 불리우는 금정산에는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범어 3기, 금정 8경 등 천혜의 자연경관과 신라시대(678년)에 창건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자리 잡고 있고, 등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제176호)과 함께 부산의 역사와 문화, 민속이 살아 숨 쉬는 관광명소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금정산성(金井山城)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로 길이 18,845m, 성벽 높이 1.5~3m, 총면적은 약 8.2 ㎢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행정 구역상 금정구,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시와 성벽을 기점으로 경계(境界)하고 있으며 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
금정산에 언제부터 성(城)을 쌓았는지는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신라 때부터 이미 성 (城)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으나 분명치 않다. 현존하는 산성은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에 의하여 숙종 29년(1703)에 동래부사 박태항이 성을 쌓았고, 숙종 33년 (1707)에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새로 쌓았으며, 순조 8년(1808) 동래부사 오한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금정산성을 지기는 일은 동래부사가 맡았으며,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삼읍 (三邑)의 군인과 승려들이 차출되어 방어하였으며, 평상시에도 산성 내에 있는 국청사, 해월사(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의 승려 100여 명과 범어사 승려 300여 명으로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을 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자적,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깃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시민 모두가 아끼고 가꾸어 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산성로에서 동문 가는 길을 바라보며 걷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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