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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둘레길/부산 갈맷길(완보)

다시 걷는 갈맷길 7코스 1구간 (역방향, 동문 ~ 어린이대공원) 2024.11.3

by 요다애비 2024. 11. 11.

거의 한 달 만에  갈맷길을 걸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갈맷길이지만 가까이 있다 보니 항상 먼 곳보다 후순위로 밀리네요.

오늘 걷는 갈맷길 7코스 1구간의 역방향은 금정산 동문에서 시작하여 어린이대공원까지 약 10Km 구간 대부분이 내리막 코스라 부담이 없는 코스입니다. 또 코스 중간에 남문마을을 지나게 되어 그곳에서 국수와 막걸리 등을 먹을 수 있어 체비도 간단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7 코스 1구간 소개>
성지곡 수원지 삼나무와 편백 숲길이 들머리다. 백양산 갈림길에서 한국산 개구리 보호지역 쇠미산 습지를 지나 송전탑이 있는 능선을 따라 만덕고개로 향한다. 금강공원으로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보면 사행하면서 흐르는 온천천과 동래구 일원의 도시경관을 볼 수 있다. 금정산성 제2망루 가는 길까지는 다소 숨이 차나, 남문을 통과한 다음 산성고개에서 동문을 지나 부채바위, 제4망루, 원효봉, 북문에 이르는 능선길은 부산 전체를 조망하는 시원한 길이다. 금정산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문루 4개소, 망루 4개소가 소재해 있다. 산성 내 산성마을에서 생산되는 막걸리와 염소고기는 그 맛이 뛰어나 등산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북문 고산습지에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있는 계곡을 따라 내려와서 팔송까지 금어동천, 비석골 서어나무 숲을 호젓이 걷는 옛길이 펼쳐진다.

 

 

 

 

<갈맷길 7코스 1구간 기록>

 

 

 

<3D궤적 동영상>

 

 

 

 

 

▼ 온천장역 정류장에서 203번 버스 탑승, 동문정류장에 하차, 동문으로 향합니다.

 

 

 

▼ 생명평화대장군과 생명산림여장군 장승

 

 

 

▼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45m, 성벽높이 1.5~3m, 총면적은 약 8.2㎢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 8)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산성의 기초는 1703년(숙종 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의 건의로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이 성을 쌓았고, 1707년(숙종 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중성(中城)을 새로 쌓았으며, 1808년(순조 8)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을 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차적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편리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금정산성 동문

     동문은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잘록한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이 아주 뛰어나고 동래읍성에서 가장 근접하기 쉬워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 달 만에 동문이 완성되었다"라고 한다.
동문은 홍예식문(虹霓式門: 무지개 형태)으로 문폭은 300cm, 홍예의 높이는 340cm이다. 동래부사 정현덕 (재임 1867~1874)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을 쓰고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두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인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동문 옆 갈맷길 인증대와 안내도

 

 

 

남문 쪽으로...

 

 

 

남문 산성고개

 

 

 

금정산(金井山) / Geumjeong Mountain
금정산(金井山)은 부산의 진산으로 주봉인 고당봉(801.5m)을 중심으로 북으로 장군봉(727m), 남으로 상계봉(638m)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파류봉 등의 많은 봉우리와 나비바위, 부채바위 등 천구만별의 기암괴석으로 되어 있는 명산이다.
동쪽으로 금정구, 서쪽으로 북구, 남쪽으로 동래구, 북쪽으로 경남 양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적 제215호 금정산성(18,845m)이 능선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의 유래는 "산마루에 우물이 있어 한 마리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 속에 놀았다"하여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전하고 있다. (東國輿地勝覽 권 23 東來縣 山川條)
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가 뒤덮고 있다 하여 천구만별(千龜萬鼈)이라고 불리는 금정산에는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범어 3기, 금정 8경 등 천혜의 자연경관과 신라시대(678년)에 창건된 천년고찰 범어사가 자리 잡고 있고, 등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제176호)과 함께 부산의 역사와 문화, 민속이 살아 숨 쉬는 관광명소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금정산성(金井山城) / Geumjeong Mountain Fortress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로 길이 18,845m, 성벽 높이 1.5~3m, 총면적은 약 8.2 ㎢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행정 구역상 금정구,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시와 성벽을 기점으로 경계(境界)하고 있으며 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
금정산에 언제부터 성(城)을 쌓았는지는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으나 남해안과 ㆍ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신라 때부터 이미 성 (城)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으나 분명치 않다. 현존하는 산성은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에 의하여 숙종 29년(1703)에 동래부사 박태항이 성을 쌓았고, 숙종 33년 (1707)에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새로 쌓았으며, 순조 8년(1808) 동래부사 오한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금정산성을 자기는 일은 동래부사가 맡았으며,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삼읍 (三邑)의 군인과 승려들이 차출되어 방어하였으며, 평상시에도 산성 내에 있는 국청사, 해월사(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의 승려 100여 명과 범어사 승려 300여 명으로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을 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자적,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깃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시민 모두가 아끼고 가꾸어 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금정산성 동문고개 성곽잇기 / East Gate Pass of Geumjeongsanseong Fortress

금정산성은 길이가 18,845m, 성내 면적이 8.2㎢, 높이가 1.5~3m가량의 국내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광대한 성곽이다. 1958년 산성로 도로개설로 인해 산성고개의 성곽이 단절되었으나 금정산성 복원 정비계획에 의거 2011년 6월 1일 성곽잇기 사업으로 준공하였다. (높이 5m 길이 13m 폭 4m) 금정산성 성곽잇기는 산성을 일 주하는 등산·탐방객의 통행안전과 야생동물의 생태계를 보호하고 산성로의 평거문(문의 윗부분이 평평한 형태)을 지나다니면서 선인들의 축성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금정산성의 얼굴이다.

 

 

 

▼ 산성고개를 건너서...

 

 

 

▼ 남문 쪽으로...

 

 

 

▼ 남문 옆 갈맷길 인증대

 

 

 

▼ 남문

 

 

 

금정산성 남문 /  South Gate of Geumjeongsanseong Fortress

남문에서는 북쪽으로 고당봉이 정면으로 올려다 보이고 남쪽으로는 백양산이 보인다. 백양산과 남문사이는 만덕고개와 만덕동이 자리한다. 그리고 금강공원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 종점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금정산성부설비>의 기록에는 “1808년 초봄에 기둥과 들보를 100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 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깎아내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들어서 만(萬) 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 만에 남문의 초루(譙樓)가 완성되었다"라고 한다. 남문은 평거식문(平居式門)으로 문의 상부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익공계 팔작지붕의 단층문루이며, 문폭은 290cm, 높이는 280cm이다.

 

 

 

남문마을 쪽으로...

 

 

 

남문마을에서 국수를 먹고...

 

 

 

만덕고개 쪽으로...

 

 

 

석불사 갈림길에서 만덕고개길 쪽으로...

 

 

 

편백숲을 지나고...

 

 

 

석불사를 당겨보고...

 

 

 

만덕고개 안내판

 

 

 

금정산 숲 속 둘레길과 겹치는 지역 통과

 

 

 

만덕고개와 빼빼영감
동래 사람이 구포장을 보러 갈 때 넘는 만덕고개는 옛날부터 동래부 관하에서는 최대의 도적 소굴로 소문난 험한 산길이었다. 어느 날이 고개를 동래 남문 밖에 사는 깡마른 <빼빼영감>이 구포장에 들렀다가 다른 장꾼들과 함께 넘게 되었다. 산을 오르던 중 갑자기 도적무리가 달려들었고 물건을 판 돈과 가진 것을 모조리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빼빼영감은 잠시 망설이나 벌떡 일어나 도적들을 공격하였다. 그 솜씨는 날쌘 비호와 같았다. 도적들은 하나둘 도망쳐 달아나고 영감은 묵인 장꾼들을 전부 풀어주었다. 그 후 영감은 "여러분 마을에 내려가거든 오늘 일어난 일은 절대로 말하지 말아 주시오"라고 당부했다. 장꾼들은 흐뭇한 미음으로 고개를 내려와 돌아갔다. 그리고 사흘 후 장꾼 중 한 사람이 빼빼영감의 집을 찾았더니 그 집은 텅텅 비어 있었다.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오자 나라에서는 빼빼영감이 비상한 힘을 가진 장사인 것을 알고 찾았으나, 그 행적을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계단을 피해 우측 옆길로...

 

 

 

석불사를 당겨보고...

 

 

 

산악자전거...

 

 

 

웰빙산책로...

 

 

 

구민의 숲 쪽으로...

 

 

 

동래구와 북구 경계

 

 

 

걷기 좋은 내리막길...

 

 

 

만남의 광장

 

 

 

 사명대사상

 

 

 

6.25 참전용사 기념비

 

 

 

어린이대공원 도보인증대에서 걷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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