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외씨버선길 12길과 13길을 연속해서 걸어 전제 구간을 완주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집을 나서, 6시 15분경 외씨버선길 13길의 종착지인 관풍헌 근처에 주차해 놓고, 6시 22분경 관풍헌버스정류장에서 10번 버스를 타고 12코스 출발지인 김삿갓문학관으로 향하였습니다.
6시 50분경 김삿갓문학관에서 12길~13길, 36km의 긴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외씨버선길 12길(김삿갓문학길)은 김삿갓문학관에서 출발하여 김삿갓계곡과 가랭이봉 등을 거쳐 김삿갓면사무소에 이르는 12.7Km의 구간입니다.
코스 초반은 비가 온 뒷날 아침이라서 촉촉하게 젖은 길이 약간 미끄럽긴 했지만 햇살을 맞으며 한적하고 아름다운 계곡을 걷는 즐거움을 한껏 누렸습니다.
중반 이후에는 오르막 구간이 두 곳 있었는데, 한 곳은 김삿갓교 건너서 사유지를 우회하여 산을 올랐다가 든돌 지역으로 내왔던 곳과 또 다른 한 곳은 가랭이봉 등산로 입구부터 예밀교까지는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가 내려와야 했습니다.
<외씨버선길 12길(김삿갓길) 개념도>
<외씨버선길 12길(김삿갓문학길) 기록>
▼ 오늘의 최종 목적지 관풍헌에 주차를 해 놓고, 6시 22분에 버스를 타고 김삿갓문학관으로 출발...버스는 줄곧 혼자만 타고 갑니다.
▼ 김삿갓문학관에 도착
▼ 07:00 경, 외씨버선길 영월객주에서 12길(김삿갓문학길) 출발
▼ 허언시
청산영리녹포란
백운강변해타미
석양귀승계삼척
누상직녀남일두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만이 한 말이네
▼ 삼도접경 김삿갓 쉼터
▼ 노루목교를 건너 김삿갓로를 따라...
▼김삿갓유적지(묘역)를 구경하고...
▼ 영월군관광안내도
난고 김병연(김삿갓)
김병연(1807-1863: 순조 7~철종 14)은 선천의 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노목 김성수의 구원으로 형 김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에 숨어 살았다
그러나 김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을 폐문한다는 조정의 결정이 알려지면서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광주를 걸쳐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반역죄로 인한 죄는 거의 연좌제로 처벌을 받아 가문의 3대를 멸족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이들 모자가 처벌되지 않았던 것은 당내 실권 세력이 안동 김씨였기 때문에 이들 모자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이렇게 김병연의 모자는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으나 떳떳한 사대부로 지낼 수 없는 실정이었다. 명색이 반역죄로 조부인 김익순이 능지처사를 당하였고 집안에 배척을 당했기 때문이다.
문중에서 거의 추방된 이들 모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산속 깊은 곳에서 권문세족임을 밝힐 수 없이 살아가야 했다. 영월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곳을 택하여 생활하면서 반가의 기풍과 안목을 갖춘 김병연의 어머니 함평 이 씨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가문의 내력에 대한 소상한 진상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만 정진을 하여온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과거(백일장)에 응시하여 “論鄭嘉山 忠節死嘆 金谷淳 罪通于天”이라는 시제 아래 장원급제를 하였다. 위와 같이 뛰어난 글 솜씨로 장원급제를 하게 된 난고 김병연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한 일들을 전해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난고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 하여 삿갓에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금강산 유람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를 돌았으며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몇 해 동안 훈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전라도 동복땅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
▼ 정암 박영국선생 공적비
정암(靜巖) 박영국(朴泳图) 선생의 본관은 반남(南)이며, 시조인 고려호장(戶長) 응주(應珠) 공의 24 세손으로 1917년 9월 13일 영월군 주천면 용석리에서 출생하셨다. 평생을 향토사학에 전념해 오시면서 주천면 금마리 독립만세상 건립, 수주면 도원리 3공 제명석(三公题名石) 복원, 영월읍 방절리 생육신 조여비원 건립을 비롯 향토민속놀이의 발굴 전승에 크게 기여하셨다. 특히, 선생께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전으로 내려오는 시선(詩仙) 난고 김삿갓이 10 승지(十勝地)인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 내력을 밝히고 그가 살던 집터와 묘를 찾았다. 또한 김삿갓유적 보존회를 구성 김삿갓이 방랑생활을 하며 읊었던 유지(詩)를 수집하여 「김삿갓의 유산」 책자를 발간하는 등 김삿갓 유적의 발굴과 보전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 금번 제2회 난고 김삿갓 문화 큰 잔치를 개최하면서 선생의 향토문화 사랑에 대한 큰 뜻을 후세에 오래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운다.
▼ 김삿갓 거주지는 이것에서 1.8Km 가야 하는군요...
▼ 김삿갓 묘역
난고(蘭皐) 김삿갓(金炳淵)의 생애
선생은 안동 김 씨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宣平)'의 후예로 순조 7년(1807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부(父) '안근 (安根)'과 모(母) '함평 이 씨(李氏)'사이에서 이남(二男)으로 출생하였고, 본명은 '병연(炳淵)'이고 호는 '난고(蘭阜)'이다.
순조 11년(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당시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역적으로 몰려 폐족 처분을 받아 가족이 영월로 옮겨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모친 함평 이 씨는 자식들에게 조부의 사연을 숨긴 채 글을 가르쳤으며, 김삿갓이 20세 되던 해 영월 동헌에서 개최되었던 백일장에 응시하여 선천부사 김익순을 비판하는 글로 장원 이 되었다.
그 후에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시(詩)로 읊어 조선시대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다.
1863년 전리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작고하여 그곳에 묘를 썼으나, 삼 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모셨다.
▼ 난고 김병연 선생 추모시비
그리운 김삿갓
계곡 흐르는 맑은 물소리에
당신의 목소리가 스며 있고
청산에 이는 푸른 바람소리에
당신의 눈빛이 배어 있다.
옷깃 스치는 이슬처럼
세상을 살다 간 당신
고을 고을마다 당신의 깊은 발자욱
들꽃처럼 피어나 손짓하는데
첩첩 산산 물소리 바람소리
당신의 시혼인 것을
이제야 우리 그대 맑은 눈빛을
마주 바라다본다
▼ 묘역에서 내려와 김삿갓교에서 계곡으로...
▼ 촉촉 젖어있는 계곡길을 따라서...
▼ 햇살도 드리웁니다
▼ 나무데크도 지나고...
▼ 김삿갓면사무소 쪽으로...
▼ 로프 설치지역
▼ 미끄러운 나무다리...
▼ 벌집도 보고...
▼ 미끄럼 방지용...
▼ 계곡을 바라보고...
▼ 돌무덤 지역도 지나고...
▼ 시멘트길에 접어 들어서 다리도 바라보고...
▼ 물레방아 완주인증 사진촬영지점
▼ 안내판 뒤쪽에 물레방아가 보이네요...
▼ 김삿갓로를 따라서...
▼ 시멘트길 끝지점
▼ 사유지를 우회하여...
▼ 계곡 건너 캠핑장을 바라보고...
▼ 삿갓교가 보입니다...
▼ 삿갓교를 건너서...
▼ 사유지 뒤쪽으로 우회합니다...
▼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며...
▼ 거의 위쪽에 올라왔습니다.
▼ 김삿갓 계곡을 바라보고...
▼ 든돌마을 표지석 쪽으로 하산
▼ 바로 옆에 묵산미술박물관이 있군요...
▼ 든돌에 대한 설명인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ㅉㅉ
▼ 든돌인 듯...
▼ 묵산미술박물관 입구 통과
▼ 김삿갓휴게소 쪽으로...
▼ 와석 1교를 건너서...
▼ 이 지역은 강원도입니다...
경상북도에서 강원도까지 걸어서 넘어왔군요...
▼ 낮은 고개를 넘어서...
▼ 김삿갓 계곡 안내판 통과
▼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
방랑시인 김삿갓
작사: 김문용
작곡: 전오승
노래: 명국환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
일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든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바람에 지치었니 사람에 지치었니
개나리 봇짐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
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 해던가
석양 지는 산마루에 짐을 지는 김삿갓.
발 닿는 곳마다 해학과 파격의 시로 세상을 마음껏 풍자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김삿갓(본명: 김병인, 1807~1863) 그를 추모하는 이 노래는 명국환(1933.1.9) 선생이 1958년에 발표한 이래 국민들의 애창곡으로 김삿갓의 고장 영일일 노래임을 자랑하면서 「제3회 난고 김삿갓 문화큰잔치」를 기념하여 이 비를 세운다.
▼ 영월동로에서 들모랭이길로...
▼와석 1리 마을회관 앞 완주인증 사진촬영지점
▼와석 1리 마을회관
▼ 포도밭과...
▼ 옥수수밭도 지나고...
▼ 들모랭이 달팽이쉼터
▼ 들모랭이길을 따라서...
▼ 온 가족이 일손을 도우는 듯....
▼ 산 아래, 와석재 터널이 보입니다...
▼ 메기못(메기 소(沼))도 지나고...
선락동 계곡과 의풍의 남대천(南大川)에서 흐르는 물이 합치는 곳으로 옛날 이 소(沼) 옆에 송아지를 매어 놓았는데 큰 메기가 나와서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예전에는 명주실 한 꾸리가 다 들어갈 정도로 물이 깊었다고 한다.
▼ 가랭이봉 등산로 쪽으로...
▼ 출발지에서 9Km 지점 통과
▼ 이 개천은 남한강 상류인가 봅니다...
▼ 가랭이봉 등산로 쪽으로...
▼ 번개오색나비
▼ 바위를 휘돌아서...
▼ 가랭이봉 등산로 입구에 도착
▼ 옥동 쪽으로...
▼ 와석전망대... 전망은 없습니다...
▼ 간혹 숲 사이로 보이는 마을...
▼ 지르네 전망대
▼ 옥동이 휘돌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 밀골전망대
▼이곳의 전망이 가장 좋습니다.
▼ 예밀교 쪽으로 하산 완료
▼ 예밀교에 도착하니 운탄고도 표지판도 보이네요
▼ 옥동리 표지석
▼ 옥동초등학교
▼ 김삿갓파출소
▼ 늘보... 쉬었다 갈 시간이 없어요 ㅉㅉ
▼ 10시 45분, 12길의 종착지 김삿갓면사무소에 도착
▼ 인증사진을 찍고, 면사무소 앞 정자에서 13길(관풍헌 가는 길)을 가기 위해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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