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심하게 끼인 날이지만, 오늘 걸었던 서해랑길 64-3코스는 해미읍성, 개심사, 서산보원사지, 마애삼존불상 등 삼국시대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길이었으며, 계절은 완연한 봄이어서 가는 곳마다 생기가 있어 더욱 아름다웠던 코스였습니다.
해미읍성에서 시작하여 개심사와 상왕산 둘레길 오를 때까지 오르막 구간은 있었지만, 중간중간에 접하는 봄 야생화와 유서 깊은 문화유적지로 인해 힘든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특히 개심사 법당 앞에서는 절정의 겹벚꽃과 청벚꽃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보원사지의 석탑과 당간지주 등 살펴보며 큰 규모에 다소 놀랐습니다. 그리고 아침 햇살의 방향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는 국보 84호의 마애삼존불상에는 오후의 짧은 시간에 머물러 표정 변화를 볼 수 없어 다소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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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지점>
해미읍성 ~ 5.1Km ~ 개심사 ~ 7.8Km ~ 고풍저수지 ~ 4.9Km ~ 운산교 : 길이 17.8km
<코스개요>
-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삼국시대의 문화와 건축의 숨결을 마주할 수 있는 역사기행
- 싱그러운 숲길과 봄꽃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코스
<관광포인트>
- 조계종 수덕사의 말사로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사찰 '개심사'
- 보물로 지정된 4m 높이의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등 유물이 남아있는 '서산보원사지'
- 빛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백제시대 불교예술의 정수 '마애삼존불상'(국보 84호)
<여행자 정보>
- 시점: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
교통편) 서산공용버스터미널에서 530번 버스 이용 해미우체국 정류장에서 하차
- 종점: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 운산교
- 개심사는 봄철 벚꽃 명소로도 유명함
<서해랑길 64-3코스 기록>
<서해랑길 64-3코스 동영상>
▼ 해미읍성 근처의 서해랑길 64-3코스 안내판
안내판에는 서산아라메길(천년미소길), 내포문화숲길(원효깨달음길)과 겹치는 구간에 대한 설명도 있군요
▼ 읍성곽길을 따라서...
<해미읍성>
성곽둘레 1,800m, 높이 5m, 면적 약 20만㎡ 정도로 넓은 평지에 축조된 해미읍성, 덕산에 있던 충청 병마절도사영을 해미로 옮기고자 태종 17년부터 세종 3년까지 약 4년간 축성되었으며, 효종 3년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주둔한 충청의 군사중심지였다.
▼ 해미읍성의 동문 잠양루
천주교 박해 성지인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은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읍성으로 꼽힌다
▼ 해미성지둘레길 안내판
해미읍성은 어떤 곳일까?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10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해미읍성 전통문화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교회 역사 중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 중의 한 곳이다.
▼ 해미국제성지
해미국제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던 병인박해(1866년) 때에 천주교 신자 천여 명이 생매장당했던 아픔의 공간이다. 예수마리아를 부르며 기도 하던 신자들의 외침을 주민들이 여수머리로 알아들어 여숫골이라 불려 왔다. 2014년 8월 17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미성지를 찾아 순례하였고, 2020년 11월 29일에 해미성지를 세계적 명소인 국제성지로 선포하였다.
▼ 성곽길에서 벗어나 일림산 숲길로...
▼ 개심사 쪽으로...
▼ 서산아라메길 장승을 지나서...
▼ 현호색이 지천에 피었습니다...
▼ 서산아라메길, 해와 달 이야기 안내판
해와 달 이야기
가야산 - 많은 수행처가 있고, 많은 수행인들이 머물다 가는 곳,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과 정신이 머물다 가는 곳,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신성한 곳... - 을 표현한 이 작품은 한편으로는 시간 방위를 의미하는 12지신으로 구성하여 이곳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 모양을 표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곳의 신성성을 함께 느껴보고자 하는 의도로써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십장생을 소재의 구성하여 신선(神仙)이 산다는 신선동 계곡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발길 속에 잠시나마 휴식과 사색의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이지신 자(子) ㆍ축(丑) ㆍ인(寅) ㆍ묘(卯)·진(辰)·사(巳) ·오(午)·미(未)·신(申)·유(酉) 술(戌)·해(亥)
십장생 해/달 ㆍ 산 ㆍ 구름 ㆍ 물 ㆍ 바위 ㆍ소나무 ㆍ 불로초 ㆍ 학 ㆍ 사슴 ㆍ 거북
▼ 쉼터도 지나고...
▼ 황사로 인해 황락저수지가 뿌옇게 보입니다...
▼ 오학리 입구 장승
▼ 걷기 좋은 임도를 지나서...
▼ 임도 차량통제 안내판에서 숲길로...
▼ 벌목 지역도 지나고...
▼ 연륜이 묻어나는 장승
▼ 상왕산 개심사 일주문을 지나서...
▼ 내포문화숲길 안내판
▼ 개심사에 도착
▼ 벚꽃을 감상하고...
▼ 해탈문 통과
▼ 대웅보전(보물 제143호)
서산 개심사는 의자왕 14년에 백제의 승려 혜감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개심사 대웅전은 개심사의 중심 건물로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지만, 개심사 대웅전에는 아미타불(보물 제1619호)과 그 양옆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함께 모셨다.
조선 성종 6년에 불에 타 없어져 성종 15년에 새로 지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개심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부재를 공포라 하는데 이러한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것을 주심포라고 하고,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것을 다포라고 한다. 개심사 대웅전은 주심포계와 다포계가 절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안양루, 오층석탑, 심검당
▼ 심검당(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8호)
개심사 심검당은 스님들이 생활하며 수행하는 건물로, '참선을 통해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개심사 심검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개심사가 성종 6년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성종 15년에 중창하였다는 성종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심검당도 이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영조 7년에 고쳐 지었고, 1974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원래의 건물은 심검당 현판이 걸려 있는 오른쪽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었으나, 왼쪽에 지붕이 살짝 낮은 'ㄱ'자형 건물을 덧붙여서 규모를 늘렸다. 지붕의 앞부분은 겹처마, 뒷부분은 흘처마의 맞배지붕이며, 기단석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가미된 기둥을 세워 자연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 건물에서 발견된 상량문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박시동이라는 목수 이름까지 있어 건축사적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기둥 보세요... 특이하죠....
▼ 무량수각
▼ 명부전 앞 벚꽃
▼ 청벚꽃도 보입니다...
▼ 산신각
▼ 상왕산 쪽으로 오르며...
▼ 정자가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랐습니다...
▼ 보원사지 쪽으로... 이제부터는 걷기 좋은 임도를 걷습니다...
▼ 가야산 옛 절터 이야기길 안내판
▼ 메지기골 갈림길...
▼ 보원사지에 도착... 위쪽부터 관람합니다...
▼ 사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탑비
▼ 법인국사탑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은 옛 보원사 터에 세워진 탄문(900~957)의 승탑이다. 탄문은 고려 초의 대표적인 화엄종 승려로서 광종 때 승려 최고 직위인 왕사와 국사를 지냈으며, 말년인 975년에 보원사로 내려와 머물다가 3개월 만에 입적하였다. 고려 왕실은 탄문에게 '법인'이라는 시호를, 그의 승탑에 '보승'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국가의 최고 장인을 보내 승탑과 탑비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승탑은 탄문이 입적한 975년에서 탑비의 비문이 완성된 978년 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사리탑, 부도, 묘탑이라고도 하며, 사리를 넣어두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기단을 쌓아 받치고, 위에는 머리 장식을 얹는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통일신라 승탑 양식에 따라 머리 장식을 제외한 모든 석재가 팔각형으로 제작된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승탑이다. 이 승탑은 몸돌의 사천왕상과 보관을 쓴 인물상, 지붕돌의 귀꽃(지방돌 모서리에 새긴 꽃모양의 장식) 등의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
▼ 법인국사탑비
법인국사의 탑비로 978 고려 경종 3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다. 비몸 높이 230cm, 폭 115cm, 글자 수 5,000여자나 되는 거비이며 국공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다. 이분은 신라말~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이다.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계減를 받고 968년(광종 19)에 왕사, 974년(광종 25)에 국사로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중 26)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강화 작업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 교승 천여 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做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 서산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옛 보원사 터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이다. 현재 보원사 터 가운데 서쪽 사찰 구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이 탑은 상하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 장식이 있는 구조이다. 현재 머리 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고, 그 위에 머리 장식을 고정하기 위한 철제 찰주(탑의 중심기둥)가 꽂혀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다. 기단의 이중 구조, 상하층 기단 옆면에 을 새김한 사자와 팔부중의 배치나 조각 수법 등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모습이지만 조각이나 돌을 다듬는 기술 등이 다소 섬세하지 못한 점은 고려 석탑의 특징이다. 또한 지붕돌이 얇고 넓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네 모서리 끝이 살짝 들린 것은 옛 백제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탑의 특색이다.
1968년과 2003년에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1968년 해체할 때 사리구(사리 용기)와 함께 납석제 소탑(작은 모형 탑) 등이 나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전시 중이다.
▼ 보원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당간(幢竿)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이다. 당긴(竿)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임과 공력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술)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이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측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기단부(基壇部)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 (基壇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서산보원사지 | 瑞山普願寺址 Seosan Bowonsa Site
■ 지정연월일 : 1987년 7월 18일
■위 치: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48 외 70필지
소 유: 국유(서산시)
규 모: 102,866㎡
■시 대: 백제시대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다. 이 절터에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던 것을 중앙 박물관에 전시 중이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와 신라,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이다.
유물로는 백제계의 양식 기반 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보물 104호),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보물 102호), 975년(광종 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승탑(보물 105호),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 (보물 106호), 사찰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 (보물 103호)가 있다. 가까이에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백암사지 등 불교유적이 집중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 보원사지 석조
▼용현 2리 버스정류장 통과
▼ 보현사지 갈림길
▼ 참사람의 향기 서산도량
▼ 마애여래삼존상 가는 길 입구
▼ 돌계단을 올라서...
▼ 마애 관광안내소
▼ 불이문을 지나서...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
마애여래삼존상을 바라볼 때, 중앙에 석가여래 입상을 기준으로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 백제 후기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선을 새겨 넣거나 도톰하게 솟아오르도록 다듬어 만든 불상을 말한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불상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2.8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한 이곳 충남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다. 6세기 당시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으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백제의 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다.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 입상,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제화갈라보살 입상,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사유상은 백제 특유의 자비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 준다. 이들 불상의 미소는 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다.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함은 물론 과학적 치밀함도 감탄을 자아낸다.
▼ 산신각
▼ 계곡을 바라보고...
▼ 마애삼존불길을 따라서....
▼ 강댕이 미륵불
이 강댕이 미륵불은 현재의 고풍저수지 상단부 안에 있었던 것을 저수지로 축조하면서, 수몰되게 되어서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성연대는 고려말 조선초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16Cm, 어의 폭은 65Cm , 두께는 25Cm이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라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 위에 대어 서산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행하는 중국 시신 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기도 하고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이었다고도 다.
▼ 예쁜 정원을 구경하고...
▼ 고란사 표지석
▼용현 2리 삼거리
▼ 규모가 아주 큰 고풍저수지를 지나서...
▼ 운산 쪽으로...
▼ 고풍터널 버스정류장
▼ 고풍터널을 지나서...
▼ 고풍대교 아래길로 진입...
▼ 고풍저수지 댐을 바라보고...
▼ 역천을 따라서...
▼ 운산교 쪽으로...
▼ 예쁜 정원 감상
▼ 운산면 소재지
▼ 역천변의 파크골프 시설
▼ 문화재보고 청정 운산 안내판
▼ 운산교 옆 서해랑길 안내판에서 64-3코스 걷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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