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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둘레길/DMZ 평화의 길

DMZ 평화의길 1코스[김포]문수산 남문입구-[강화]강화평화전망대 (2025.3.4일)

by 요다애비 2025. 3. 6.

드디어 코리아둘레길 전 구간을 완주할 마지막 여정인 강화도 평화전망대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35개 코스 510Km의 DMZ 평화의길 1회 차 첫발을 디뎠습니다.

우리나라 남단 동쪽 끝자락의 부산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먼 최북단 지역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전 일정을 무박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번에 도전하는 DMZ 평화의길은 산악회나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고, 작년에 서해랑길을 완주하였던 분들과 DMZ 완주를 목표로 하는 28명의 회원이 동참하여 직접 차량을 수배하였고 필요경비는 1/n로 운영하여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며, 월 2회 출정하고 한 번에 2개 코스를 걸어서 총 18회 만에 완주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DMZ 평화의길은 34개 본선외에 1개의 지선과 13개 우회로가 있는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선과 지선을 우선으로 완주할 계획입니다.






오전 9시 20분경, 문수산성 초입에서 DMZ 평화의길 2코스 역방향 걷기를 종료하고, 이어서 곧바로 1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문수산에서 하산할 때 부터 내리던 눈은 1코스를 걷는 내내 내렸습니다. 
김포에서 옛 강화교를 건너 강화도에 진입하였고, 해안가 철책선은 강화평화전망대까지 이어집니다.
이 코스 중에는 갑곶돈대, 진해루, 6.25 참전용사기념공원, 월곶진 연미정, 고려천도공원 등 볼거리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2곳의 검문소를 지났는데, 연미정 근처 검문소는 주민의 안내에 따라 우회하였고, 강화평화전망대 근처의 검문소는 주민 외에는 도보로 통행이 불가하다 하여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대기 중이던 버스를 불러서 그 차에 승차하여 검문소를 통과하여 강화평화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검문소 통과 시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대체로 만족한 1차 출정(1코스와 2코스 완주)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 아래 DMZ 평화의길 소개는 두루누비 홈피에서 퍼옴

<DMZ 평화의길 1코스 소개>

♧ 코스개요
-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출발해 연미정을 지나 김포 문수산성 남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 강화도의 북동쪽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휴전선에 해당하는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북한을 조망할 수 있다.
- 조선 시대 한성 방어의 최전선이었던 강화도의 역사 유적지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 관광포인트
- 북한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
- 잘 보존된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연미정
- 6.25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6.25 참전용사기념공원
- 조선 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새였던 문수산성

♧ 여행정보(주의사항)
-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6.25 참전용사기념공원까지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6.25 참전용사기념공원 구간은 일몰 1시간 전부터 통행이 제한됩니다.
    해당구간은 군사지역으로 반드시 지정된 노선만 이용 바랍니다.
    군사시설 접근이나 사진촬영은 금지됩니다.
 
♧ 주요지점 및 편의시설
강화평화전망대- 3.6Km - 고려천도공원 5.9Km - 연미정(월곶돈대) - 4.5Km - 진해루 - 1.9Km - 문수산성남문 : 길이 15.9km
 


♧ 스탬프 QR 위치
시점 : 강화평화전망대 주차장,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 전망대로 795
종점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문수산로 8
 
 
 
<DMZ 평화의길 1코스 역방향 기록>
 

 
 
<DMZ 평화의길 1코스 3D 비디오>
 
 

 
 
 
▼ 오전 9시 29분 문수산성 남문 입구에서 DMZ 평화의길 1코스 역방향으로 걷기 시작
 

 
 
▼ 문수산로에서 바라본 문수산성
 

 

 
 
▼ 옛 강화교 입구에 도착
 

 
 
▼ 강화교를 건너며...
 

 
 
▼ 강화대교를 바라보고...
 

 
 
▼ 진해루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 왼쪽은 갑곶돈대
 

 
 
▼ 다리를 다 건너왔습니다...
 

 
 
▼ 뒤돌아보고...
 

 
 
▼ 평화의길을 따라서...
 

 
 
▼ 강화통제영학당지
 

 
 
▼ 진해루
 

 
 
▼ 일행들이 눈을 피해서 진해루 아래에서 쉬고 있네요...
 

 
 
▼ 강화외성(진해루) / 江華外城(鎮海樓)
강화외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개성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도록 강화도 동쪽 해안을 따라 쌓은 성이다. 조선 시대에도 강화도는 국왕의 피난처이자 국방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강화외성을 개축하고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숙종 때는 병자호란 1636으로 허물어진 성을 돌로 고쳐 쌓았고, 영조 때는 일부 구간을 벽돌로 다시 쌓았다.
문루는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을 의미하는데 강화외성에는 조해루, 복파루, 진해루, 참경부, 공조루, 안해루 등 6개의 문루가 있다. 이 중 진해루는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도와 내륙을 잇는 주된 관문이었다.
주춧돌만 남은 진해루터를 발굴하고 조사하여 2020년에 성곽의 일부와 함께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강화대교 아래 통과
 

 
 
▼ 갑곶 순교성지
1866년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갑곶 돈대로 상륙했다.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혹독한 박해가 시작됐고 갑곶 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또 1871년에는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로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이 갑곶 진두에서 순교했다. 후에 천주교 인천 교구는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2004년 2월 10일 갑곶 순교성지 첫 미사를 드렸다. 강화도 성지로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진무영(鎭武營) 순교성지, 관청리 형방이 있으며, 십자가의 길, 순교자 삼위비, 박순집 베드로 묘 등을 순례할 수 있다. 성지순례를 위해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

 

 
 
▼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 월곶리 연미정 쪽으로...
 

 

 

 
 
▼눈 내리는 용정리 들판
 

 
 
▼ 평화전망대 쪽으로...
 

 
 
▼ 강화나들길...
 

 
 
▼ 1코스는 대부분 철책선 옆을 지납니다...
 

 
 
▼ 월곶진 / 月串鎭
월곶진은 한강 하구에 위치하여 염하를 통하여 인천 방면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왕래할 수 있으며, 중국과도 교통할 수 있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전쟁 이전만 하더라도 매우 번성한 포구 중의 하나였다. 원래 교동에 있던 진을 조선 효종 7년 1656에 강화유수 홍중보가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월곶진 주변에는 월곶돈대와 황형 택지, 연미정 등의 유적이 있다. 주변에서는 상당량의 기와편과 자기편 등이 발견되고 있다
 

 
 
▼ 한강물 천리를 돌아 바다의 품으로
     연미정
    (사진이야기~)
고려시대 세워진 이 정자는 돈대 앞 물길이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 이름 붙여졌다. 사진은 강 건너 북한이 지척에 보이는 월곶 돈대의 성곽 안이다. 50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감싸고 있는 연미정은 곡선을 그리며 날렵하게 올라간 처마의 선, 사방으로 탁 트인 정자의 모습과 성벽 같은 돈대가 둘레를 치고 있어 아늑하고 풍광이 수려하다. 정자에 올라 바라본 고요한 아침 풍경과 해지는 석양은 가히 숨을 멈추게 한다. 귀한 사람과 연회를 나누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한다면 멋진 사진뿐 아니라 귀한 시간과 공간을 누려보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황형 택지
황형 택지는 조선 중기 무신이었던 황형(1459~1520년)의 옛 집터이다. 황형은 1510년(중종 5년)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 방어사로 적을 크게 무찔렀고, 1512(중종 7년)에는 함경도 지방에서 야인들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 연미정으로 오르며...
 

 
 
▼ 월곶돈대 / 月串墩臺
월곶진에 속한 월곶돈대는 남으로는 염하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조강을 통하여 서해로 진출할 수 있다. 또한 과거 서울, 인천, 연백 등지로 교통할 수 있는 월곶 나루가 있던 해상로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월곶돈대는 조선 숙종 5년 57 강화유수 윤이제가 정비한 돈대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규모는 동서 폭 47m, 남북 폭 38m이다. 서쪽 하단부에는 월곶진의 문루인 조해루를 복원하였다.

 

 
 
▼ 연미정 / 燕尾亭
연미정이 있는 월곶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서해와 인천으로 흐르는 물길 모양이 제비꼬리 : 연미와 같다고 하여 정자의 이름을 연미정이라 하였다. 연미정은 강화 10경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의 절경으로,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리고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의 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고종 31년 1244에 구재학당 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놓고 공부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묘호란 때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형제 관계의 강화 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 20년 1744에 중건되었으며, 조선 고종 28년 1891에 중수한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 2019년 9월 태풍 ‘링링’에 의한 강풍으로 연미정 느티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쓰러졌다.
 

 
 
▼ 남과 북의 강이 하나 되어 흐르는 연미정
사방으로 탁 트인 연미정은 강화 8경에 꼽힐 만큼 남다른 절경을 자랑하며 달밤의 경치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옛날에는 서해에서 서울로 향하던 배가 모두 연미정 아래에 닻을 내렸다가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지며 정묘호란 때는 인조가 후금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연미정 앞바다는 남한의 한강과 북한의 임진강이 하나 되어 서해로 흐르는 만남의 장이자 사방아 탁 트인 시원한 풍경으로 지척의 고향을 그리워만 할 수밖에 없는 실향민의 아름을 달래주는 곳이기도 하다.
정자에서 우측으로 바라보이는 섬 유도는 재미있고 훈훈한 일화를 품고 있다. 1996년 홍수 때 북한의 소 한 마리가 유도로 떠내려 왔는데 비무장지대라 남쪽 모두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나날이 야위어가는 소를 보다 못한 남북이 극적으로 협의하여 우리 군이 구출하였고 '평화의 소'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후 '평화의 소는 제주도 출신의 '통일염원의 소'와 부부의 연을 맺고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 남북의 주민들은 연미정 앞바다를 사이에 두고 바라만 보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남과 북에서 시작된 두 개의 강은 연미정 앞을 유유히 돌아 흘러 큰 바다로 함께 나아간다. 남북의 두 강물이 하나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연미정에서 미래의 남북 주민들도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함께 나아가기를 꿈꾸어 본다.
 

 
 
▼ 월곶돈대에서 바라본 북한 땅... 눈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연미정 인근 주민의 안내로 검문소를 우회하여 계속 걸어갑니다.
 

 
 
▼ 독립지사 유경근 선생 묘지
 

 
 
▼ 철책선을 따라서...
 

 
 
▼ 다송천
 

 
 
▼공사 중인 곳도 지나고...
 

 
 
▼ 승천포 고려천도공원
 

 
 
▼ 강화 천도와 승천포
강화천도는 고려 몽골 전쟁 때 장기간 항전하기 위해 고려 고종이 1232년(고종 19년)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긴 일이다. 새로운 수도로 선정된 강화는 조석 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빨라 공격이 쉽지 않은 반면, 수도인 개경과 가깝고 지방과의 연결 혹은 조운 등이 매우 편리한 곳이었다. 승천포는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를 단행할 때에 고종이 처음 강화에 발을 디딘 곳이며, 이후 몽골과 교섭할 때 두나라 사신들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지금은 북한과 마주 보는 지역이라 긴 철망으로 가로막힌 민간인 출입통제 구역으로서 주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397번지, 399번지 일대이다..

 

 
 
▼ 강도 시기의 찬란한 문화
39년간 대내외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강도 시기(몽골의 침입으로 강화에 도읍을 옮긴 시기를 이르던 말)의 고려는 찬란한 문화를 남겼다. 특히 세계기록유산인 고려대장경판이 제작되어 당시의 불교문화가 세계적인 수준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목판 인쇄의 단점을 보완하였다. 목판 및 금속활자 인쇄술과 함께 고려청자 등 공예미술문화의 발전 또한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금속활자 인쇄는 금속활자를 배열하여 빠른 시간 안에 인쇄하는 신기술이다. 고려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것은 목판인쇄술과 청동 주조술의 발달에 기반한 것이었다. 강화천도 이전부터 금속활자술은 사용되었으며, 강화천도 직후인 1234년경 의례에 대한 내용을 담은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으나 현재 이 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원나라의 지배로 쇠퇴하였으나 지방 사찰에서는 지속적으로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불교서적을 찍어낼 수 있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고려청자
고려청자는 12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고 왕실, 귀족과 사찰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강화의 고려왕릉에서 출토된 청자는 유색이 좋고 장식문양과 제작 수법이 세련되었다. 왕실 이외에도 무신정권기의 권력자였던 최항의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지는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는 왕실 자기에 비해서도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강화중성 주변 건물지 발굴조사에서도 최상급의 청자류가 출토되어 왕실 못지않은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 상정고금예문요
최초의 금속활자 상정고금예문
상정고금예문은 1109~1146년(인종), 최윤의 등 17명이 왕명으로 고금의 예의를 수집, 고증하여 50권으로 엮은 전례서이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강화도 천도 후 최이의 주도 아래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 28부를 인쇄했다는 사실이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최이는 1234년 진양후로 책봉됐고 이규보는 1241년 숨졌기 때문에 아마도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1234년에서 1241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직지심체요절 보다 130년이나 앞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뒷받침 매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최이가 직접 쓴 글에 따르면, 강도 시대인 1239년(고종 26년) 당시 상정 고금예문 외에 또 다른 책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사실이 있는데, 책의 정확한 이름은 남명천외상송증도가 다. 실제로 이 책은 보물 제758호로 지정되어 현재 목판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당시 금속활자본을 다시 목판본으로 만들어 인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강화선원사지
팔만대장경
선원사는 고려 강도 시절 최우의 원찰(창건주가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특별히 건립하는 절)로 1245년(고종 32년) 창건되었으며, 고려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사찰이다. 조선 태조 7년 대장경판이 한양의 지천사로 옮겨진 후 선원사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전해지지 않았으나 1976년 동국대학교에 의해 조사가 시작되어 1996년에서 2000년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20여 채에 이르는 대·소형의 독립 건물이 확인되었다.

 

 
 

 
 
▼ 고려 고종 사적비
강화도에서 고종이 피워낸 찬란한 문화업적
1232년(고종 19년), 계속되는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적, 지리적 요충지인 강화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천도 후, 강화도에 고려궁을 짓고 39년간 몽골에 대항해 싸웠으며, 이 시기에 금속활자와 팔만대장경 등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사적비에는 몽골 침입과 강화 천도 배경, 역사, 강화도에서 고종이 피워낸 찬란한 문화업적 등이 담겨있다.

 

 

▼ 나무에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네요...

 

 
 

▼ 이어지는 철책선을 따라서...

 

 
 

▼ 북성리 평화전망대 쪽으로...

 

 
 
▼ 칠산삼거리 ... 시끄러운 대남방송 소음이 들려옵니다...
 

 

▼ 건너편이 북한땅인 듯...

 

 
 
▼ 남북 1.8 평화센터
 

 
 
☞ 평화전망대에서 멀지 않은 검문소에서 도보로 통행이 불가하다 하여 평화전망대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버스를 불러서 모두 그 버스를 타고 평화전망대로 이동
 
 
▼ 지난해 12월에 보았던 강화평화전망대 입구의 서해랑길 안내판
 

 
 
▼ 오후 2시 20분, DMZ 평화의길 종합안내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1코스 역방향 걷기를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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